독일 대법원·헌법재판소, 베를린 아닌 남서부 카를스루에 위치
최근 대구시청서 열린 정책간담회서 ‘대법원 대구 이전’ 거론
수년전부터 여야 막론 대법원 대구 이전 주장…속도 못내
정치권 ‘대법원·부속기관 부지’ 검토 요청에 대구시도 “검토 의향”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의 모습. 독일의 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는 수도가 아닌 남서부의 도시 카를스루에에 위치해 있다.
독일에선 '카를스루에의 선택'이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독일사회, 혹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중요 판결이 카를스루에에서 내려지기 때문이다. '법의 도시' '사법 수도'라는 별칭이 붙은 이곳에는 독일 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가 모여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도시가 변방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독일 영토의 끝자락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자리하고 있으며, 수도 베를린과는 한참 떨어져 있고 오히려 프랑스와 더 가까운 지역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법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에겐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도시로 인식돼 있다. 이유는 바로 그 지리적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도시로 대법원을 이전하자는 이슈가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 중심에 대구가 있다. 지난주 열린 대구시와 조국혁신당 정책간담회에서 '대법원 대구 이전'이 비중 있게 거론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두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입법·행정·사법의 주요 기관이 모두 서울에 집중돼 각종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며 "주요 사법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이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구는 수도권과 물리적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영남의 중심지로서 대법원이 소재하기에 충분한 의의가 있는 지역"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대구 이전' 카드는 수년 전부터 여·야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됐지만 속도를 내지 못해 '희망고문'으로 인식돼 왔다. 2019년엔 강효상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2020년엔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촉구한 바 있다. 2024년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임미애 의원 등이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대법원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한 바 있다.
여야를 떠나 대법원 대구 이전의 필요성엔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실현 가능성'이다. 관련 법안 통과와 각종 설득작업 등 선결과제가 적잖다. 중앙정부의 의지와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대구시는 대법원 이전 부지에 대해 실무적인 검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만약 대구시의 검토가 본격화하면 대법원과 그 부속기관의 이전 부지가 어디가 될지도 관심사다. 11일 대구시 관계자는 "대법원 이전 과정이 쉽지 않아서 문제겠지만, 이전만 된다면 대구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향후 정치권과 정부의 추진 상황에 발맞춰 우리도 실무 검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악의 수도권 일극체제 속에서 대구의 도시 규모는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도시경쟁력 확보가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대법원 같은 상징성이 큰 사법기관의 대구 이전이 성사된다면 국토 균형발전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논의에서 국민의힘 TK정치권이 빠져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의 대구 이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전체가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