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시각예술가
대구 달성군의 다사읍 동부 '서재리'는 필자가 태어나고 자라며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서재리는 '분지 속의 분지'라 불린다. 북쪽으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와룡산 능선을 넘어 성서 지구로 연결되며, 도심으로 넘어가기 직전 외곽의 한적한 곳이다.
이어지는 산맥을 따라 계명대역과 성서를 지나 내리막 커브 구간을 내려오면 서재리는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비가 쏟아지는 장마나 눈 내리는 겨울날이면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인해 버스가 아예 들어오지 않거나 회차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자주 고립되기도 한다. 이런 날씨에 서재 주민들은 출근길이 막혀 버스 정류장에서 몇 시간을 넘도록 기다리거나,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서 서재를 넘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서재리의 지역적 특성과 주변 환경은 자연스레 필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재리 뒤편에는 '뒷동산'이란 이름의 작은 산이 서재를 둘러 안고 있다. 필자가 다닌 초등학교를 지나면 이 뒷동산으로 올라가는 산책길이 이어지는데, 그리 길지 않은 산책로를 따라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뒷동산을 향해 자주 걸었다.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산길을 올라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꿩과 청설모, 이름 모를 종류의 꽃, 정자 위에서 내려다본 나무 너머 기찻길도 잔뜩 그려두곤 하였다. 그렇게 산 내부를 향해 걸어 들어가, 산 안에 깊이 머물렀던 감각이 익숙하게 지금도 남아있다.
필자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서재리의 뒷동산을 모티브로 '푸른 산' 연작을 그려왔다. 필자에게 서재리의 산은 항상 그곳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대상이었고, 이러한 산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캔버스 화면 상단 하늘의 면적을 아주 좁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푸른 산으로 가득 채워 산으로 빙 둘러싸인 풍경을 담았다. 산을 모티브로 여러 작업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 연작은 필자의 모든 작업의 뿌리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애착하는 작업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수성구 시지와 서재 두 지역 사이에서 거주지를 고민하시다가, 조금 더 자연과 가까이서 무탈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조용한 서재를 택하셨다. '그때 시지를 갔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덧붙이셨지만, 만일 그때 부모님께서 시지로 향하셨더라면 필자의 푸른 산 작업은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필자의 삶에 '서재리'는 너무도 익숙한 한 부분이 되었다. 매일의 풍경 속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생겨나지만, 그곳에 자리 잡은 익숙함이 때론 저마다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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