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4~28일, 대구 021갤러리 수성점에서
그래피티 입문 20년, 무명 고통과 영광의 시간 담아
LA의 ‘한복 입은 여성’. 세계 매료시킨 한국의 美
지난 13일, 021갤러리 수성점에서 전시를 준비 중인 심찬양 작가가 자신의 첫 대구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스프레이 통을 든 작가의 손이 거침없이 허공을 가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 위로 색이 흩뿌려지면 거대한 형상은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간다. 지난 13일 대구 수성구 021갤러리에서 영남일보와 만남을 가진 그래피티 작가 심찬양은 자신의 개인전 준비를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심 작가는 미국 LA 건물의 외벽을 캔버스 삼아 '한복 입은 다양한 인종의 인물'을 그리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아티스트다. 021갤러리는 오는 24~28일 수성점 전시장(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2435 두산위브더제니스 상가 204호)에서 심 작가의 첫 대구 개인전 'Decades(수십 년)'를 개최한다.
◆ LA 건물 외벽에 '한복' 입힌 김천 출신 청년
경북 김천 출신인 심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일종의 '금의환향'이다. 2006년 고교 3학년 때 우연히 접한 힙합 만화책을 통해 그래피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정확히 20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학교 농구장과 터널에 그림을 그리며 '문제아' 소리를 듣던 소년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전시명 'Decades'는 무명으로 보낸 10년과 주목받으며 보낸 10년, 미래의 10년을 의미한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2016년 미국행이었다. 서울 코엑스 전시를 통해 번 돈 몇백만 원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에서는 지인의 비좁은 단칸방 침대를 빌려 썼고, LA에서는 노숙자들이 즐비한 거리의 하루 2만 원짜리 숙소에서 20명과 함께 잠을 청했다.
심 작가는 "노숙자 밀집 지역을 지나야 갈 수 있는 열악한 숙소였지만, 잠자리에 누워 '내가 잠은 이런 곳에서 자도 꿈만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꿈을 꾸겠다'고 다짐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LA의 문화공간 '더 컨테이너 야드'에서 벽화 제안을 받은 것. 그는 "내가 가진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선물하자"는 마음으로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을 그렸다. 작품명 '꽃이 피었습니다'다. 해당 작품은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낯선 이방인의 그림에 미국인들은 열광했고, 심 작가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러한 유명세 덕분에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의 이승엽 장내 벽화도 그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지난 13일, 021갤러리 수성점에서 전시를 준비 중인 심찬양 작가가 자신의 첫 대구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화해의 메시지가 된 그래피티
심 작가의 시그니처가 된 '한복 입은 다양한 인종의 인물' 작품들은 이질적 문화의 결합이 주는 묘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그는 "처음엔 단순히 흑인이 한복을 입으면 예쁠 것 같다는 1차원적인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지만 현지의 반응은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은 열광적 반응으로 연결됐다. 심 작가에 따르면 시카고의 한 갤러리 관장은 그에게 "한인 업주들과 흑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상처가 있는데, 당신의 그림이 화해의 메시지처럼 느껴져 눈물을 흘리는 흑인들이 많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후 심 작가는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에게 자문을 구해 전통 한복의 고증을 철저히 지키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모델은 심 작가가 직접 정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친누나가 모델로 나선 작품도 선보인다.
그는 특히 여성 모델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남성 모델이 주는 권력이나 기득권의 이미지보다, 여성 모델이 주는 부드러움이 '화해'나 '공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작 중 대형 캔버스 위 모델들의 시선 처리와 구도에 눈길이 간다. 사진처럼 정교한 묘사를 추구한듯 하지만, 흘러내리는 도료의 흔적을 남겨 회화적 맛을 살렸다. 심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이 누군가 궁금해하기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높이 40m 벽에서 캔버스로… "유례없는 전시 만들 것"
야외에서 최대 높이 40m에 달하는 빌딩 외벽에 그림을 그리던 심 작가에게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은 일종의 새로운 시도다. 이번 전시를 위해 021갤러리는 높이 3.4m 너비 1.5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특별 제작했다.
심 작가는 "지난해에는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지쳐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려도 신이 날 만큼 다시 에너지를 얻었다"며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심 작가의 시선은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향한다. 영국과 독일 등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끝으로 심찬양 작가는 "20년 그래피티 인생을 응축한 이번 개인전이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충격 받는, 유례없는 전시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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