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공인회계사
경제활동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용역계약은 대가를 지불하고 용역 효익을 누리는 의뢰인과 대가를 받고 일하는 용역수행자의 2자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회계사가 수행하는 회계감사는 특별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감사를 의뢰하는 기업이 회계사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회계사가 용역을 제공하지만, 감사 결과물 이용자는 당해 기업이 아니라 투자자나 채권자, 정부와 같은 이해관계자 전체가 되는 3자 구조 형태로 이루어진다. 구조적으로 회계감사 용역은 공공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용역을 의뢰받은 용역수행자는 전적으로 고객 이익을 위해 일하는 신의성실 의무가 있지만, 회계사는 고객 이익을 최우선할 수 없다. 법률 컨설팅이나 세무 용역을 의뢰한 고객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나, 회계감사를 의뢰한 고객은 그런 특권이 없다. 분식회계를 눈감아주면서 다른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주주 이익만을 극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별한 구조로 인해 회계사들에게 엄격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특정 이해관계자나 기업을 두둔해서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 성실하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시장의 감시자이자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
회계사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 회계법인이다. 회계법인이 일반 영리기업과 차이가 있다면 주식회사 설립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식회사는 이윤 추구와 주주 부의 극대화를 지향한다. 반면 회계법인은 외부 자본참여가 금지되며 인적 요소가 강한 무한책임 형태 조직만 허용된다. 회계법인이 외부 주주 이익에 예속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회계감사 결과는 감사의견으로 나타난다.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상태와 경영성과가 재무제표에 적정하게 표시되어 있는지에 대한 감사인의 판단 결과가 감사의견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자원 배분이 이처럼 검증된 회계정보를 근거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식 투자가 이루어지고, 예산이 집행되고 금융이 실행되며 세금이 매겨진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으면 경제가 망가질뿐더러 종국적으로 국민의 삶이 피폐해진다.
우리는 대우조선 사태로 큰 비용을 치른 경험이 있다. 부실한 회계정보 제공을 방치하다가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것이다. 많은 투자자에게 아픔을 주고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이후 회계업계는 외부감사 관련 규정을 대폭 정비하였다. 표준감사시간 제도를 도입하였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상장법인을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인 등록제가 실시되었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는 감사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회계법인 내에서 세일즈 실적이 회계감사 능력보다 더 높게 평가되던 관행은 사라졌고, 감사인 독립성은 제고되었으며 직업윤리는 강화되었고 전문성 함양을 위한 교육 이수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그럼에도 최근 편의성을 명분으로 회계감사를 완화하거나 회계사 이외 직역에 공공부문 감사를 허용하자는 일부 목소리가 있어 우려스럽다. 정치는 50%가 되지 않더라도 협치와 연정으로도 가능하지만, 회계는 적당한 타협이 허용될 수 없는 분야다. 타협한 회계는 분식회계라는 기형아를 낳고, 그렇게 태어난 분식회계는 경제를 망가뜨린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는 공인회계사회 선언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회계감사는 어떤 경우에도 공정성이라는 근본 취지가 훼손당함 없이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 공정한 회계감사는 시장경제를 지키는 근간이며 자본주의 파수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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