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 인터뷰
그간 무관심 속 日시민단체와 협업해
민간자본으로 유해발굴 등 활동 이어와
DNA 감식 예정 유골도 이들이 수습
장생(조세이)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왼쪽부터) 가수 이종일, 조덕호 단장, 최봉태 대표, 심상균 사무국장이 5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장생(조세이)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인 최봉태 변호사가 5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생탄광 유해 발굴에 앞장서게 된 계기를 밝히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2월3일, 일본 우베시 앞바다에 위치한 해저탄광인 '조세이(장생)탄광'이 붕괴됐다. 갱도 천장이 바닷물의 무게와 수압을 견디지 못하면서 무너진 사고였다. 이 참사로 무려 183명이 숨졌고, 조선인 136명도 유명을 달리했다. 무엇보다 숨진 조선인 중 대구·경북 출신이 73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그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올해 1월13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골에 대한 'DNA 감정' 추진에 양국이 전격 합의한 것. 이 장면을 보면서 누구보다 기뻐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세이 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이다. 이번 DNA 감정 대상이 된 유골도 이들의 노력 끝에 8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5일 오전 대구 동구 신천동 영남일보 본사에서 귀향추진단 대표 최봉태 변호사를 비롯한 단원 3명(조덕호 귀향추진단장·심상균 사무국장·가수 이종일)을 만났다. 귀향추진단 설립은 최 변호사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 흔한 발족식도 없었다. 현재 단원 수는 모두 200여명. 추진단 내 대구·경북 출신은 모두 160여명에 달한다.
대구 출신인 최 변호사가 조세이탄광 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해 발굴에 앞장서 온 모습을 본 지인들이 앞다퉈 단원으로 합류한 것. 이들 중 조세이탄광을 둘러싼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유족은 없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최 변호사를 돕기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뭉쳤을 뿐이다.
최 변호사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현지에서 재판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당시 일본 변호사들과 시민들이 피해자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 변호사로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이후 귀국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위한 여러 활동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에 온 힘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대구시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차례에 걸친 조세이 탄광 부지 방문과 양국 정부에 희생자 유해발굴과 수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등에도 기꺼이 함께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을 위한 행보에 동참해 줘 매번 감사하다. 올 상반기 중 귀향추진단의 공식 창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2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에서 수몰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유골이 발견됐다. 귀향추진단 제공
최 변호사에 이어 조세이 탄광에 대해 말을 이어간 조덕호 단장. 그는 현재 귀향추진단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조세이)탄광의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새기는회)'에 대해 언급했다. 새기는회는 1991년부터 조세이탄광 문제를 알리고 성금을 모아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다.
이 한·일 두 단체는 2024년 7월15일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이때 최 변호사가 단원 20여명과 조세이탄광 부지를 1차 방문한 게 만남의 계기가 됐다.
조 단장은 "1차 방문 때 '새기는 회'와 직접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이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2024년 9월 '새기는 회'가 갱도 입구를 발견해 포크레인 등 장비를 이용해 장애물을 걷어내며 그 모습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라며 "이에 2024년 10월 2차 방문 때 직접 따라가 현장 곳곳을 탐색했다.
당시 일본인 잠수부가 유해 발굴을 위한 첫 해저 탐사를 실시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2월 귀향추진단의 3차 방문 땐 한국인 잠수사의 첫 해저 탐사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유해 발굴 조사 과정에서 포착된 장생탄광 희생자 유해. 작업복과 장화를 착용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장생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은 6차 현장 방문에서 해당 유해를 수습할 예정이다. 귀향추진단 제공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심상균 사무국장이 밝힌 가장 큰 쾌거는 지난해 8월 탄광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 발견이다. 한일 양국이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한 대상이 바로 이 유골이다. 그는 국가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 희생자 유해 발굴 등 후속 조치의 동력을 확보할 최적기로 내다봤다.
심 사무국장은 "유해 발굴 직후 DNA 감정이 즉각 이뤄져야 했지만 늦은 감이 있다. 유골 수습과 신원 확인으로 이어지는 빠른 후속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며 "이달 6일 조세이 탄광 부지에 6차 현장 방문을 떠난다. 수중 환경이 열악해 모든 유해를 단기간에 수습하긴 어렵지만, 이번 방문에서도 추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세이 탄광 희생자들의 유해 수습과 감식, 유가족 찾기, 고국 봉환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최 변호사는 단원 중 뜻밖의 인물도 소개했다. 조세이 탄광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래 '장생(조세이) 바다의 눈물'을 작사·작곡한 가수 이종일씨다. 이씨도 단원으로서 조세이 탄광 희생자를 위해 무언가 도움이 돼야겠다는 '일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씨가 만든 노래는 지난해 4월 열린 조세이 탄광 관련 추도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추도식에 참석한 재일교포 등이 이씨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씨는 "노랫말 중 '나라는 이미 해방됐어도 우리 아버지는 아직 몰라요. 굶주림과 매질에 탈출조차 못하던 나날'이라는 내용이 가장 제 가슴에 와 닿는다. 이번 6차 방문 때도 참여해 다시 이들을 위한 노래를 부를 예정"이라며 "바다 밑에 있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년 10월 26일 장생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 2차 방문 당시 현지에서 열린 추모식 모습. 귀향추진단 제공
이날 모인 최 변호사와 단원 3명 모두는 조세이 탄광 유골 문제가 단순한 과거사 정리를 넘어 한·일 간 인권 현안을 다시 움직이게 할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양국이 유골 DNA 감정을 추진한다는 것은 결국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돌려보내겠다는 뜻이다. 이 사안을 외교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며 "이 같은 흐름은 그동안 외교 현안에 묶여 진전이 없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생존 피해자의 인권 문제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사안까지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3·1절 이전 대통령 면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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