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내 장애물多, 체계적 조사 필요"
지난해 4월 조세이탄광 유골 조사 현장을 찾은 전영복(60·왼쪽)씨가 현장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김수원씨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지난해 4월 일본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조사 현장을 찾은 전영복씨가 탄광 배기구(피아)를 배경으로 촬영하고 있다. <전영복씨 제공>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갖고 있었습니다. 84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바다 밑에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정부가 유해 발굴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전영복(60)씨의 조부 고(故) 전성도씨는 1942년 일본 우베시 조세이탄광(해저갱도) 수몰 사고 희생자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전성도씨가 언제, 어떤 계기로 조세이탄광에 가게 됐는지는 세월이 너무 흘러 아는 이가 없다.
손자인 영복씨는 "어릴 적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일본탄광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에 조세이탄광 희생자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유해만이라도 꼭 찾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회고했다. 영복씨의 아버지 석호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조세이탄광 추모제에 참석했다. 조세이탄광 사고를 알리고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현재는 치매 증상이 악화돼 아들인 영복씨가 부친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조세이탄광 조사는 그간 한·일 양국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양국 시민단체만 관심을 가져 왔다. 영복씨는 지난해 4월 한·일 시민단체의 유해 발굴조사 현장에 부친과 함께 있었다. 영복씨는 "부친이 연로한 편이지만 한국인 잠수부가 유해발굴을 위해 갱도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현장에 기꺼이 동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허탕을 쳤지만 귀국 4개월 뒤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영복씨는 다시 희망을 품게 됐다. 그는 "유골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DNA 감식이 빨리 이뤄져 다들 가족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영복씨는 유해 발굴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열망했다. 그는 "사고 현장이 탄광이다 보니 갱도를 지탱하던 철 구조물 등 각종 장애물이 뒤엉켜 접근이 쉽지 않다. 입구도 매우 좁다"며 "구조물을 잘못 건드리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민간의 헌신에만 기대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며 "기다림이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속도감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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