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까지 야간행 등 주요 연작 20점 전시
기후 변화로 도심에 밀려난 야생동물의 밤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
지난 12일 오후1시 대구 동구 021갤러리에서 만난 권도연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권도연 작. <021갤러리 제공>
권도연 작. <021갤러리 제공>
어둠이 짙게 내린 새벽 시간, 깊은 대나무 숲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보인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에 머물게 된 까마귀들의 눈빛이다.
깊은 밤, 오래된 골목길에 두 마리의 사슴이 먹이를 찾고 있다. 10여 년 전 사슴농장에서 탈출한 사슴들의 자손이다. 주행성 동물이지만 사슴들은 사람들을 피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했고, 이 사슴들은 밤 11시가 넘어가면 도심을 돌아다닌다.
021갤러리가 오는 4월29일까지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녹투라마(Nocturama)'를 연다.
사진 매체를 통해 기억의 단편을 현실로 소환하고, 소멸해가는 존재의 자리를 기록해온 권 작가가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작업세계를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야간행' '반짝반짝 빛나는' '파도' '허블'까지의 연작 중 주요 작품 20점을 소개한다.
'녹투라마'는 W.G.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에 등장하는 안트베르펜 동물원의 '야행성 동물관'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소설 속 화자가 인공적인 어둠 속에서 유리 너머의 동물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시간과 기억의 심연을 마주했듯, 권 작가는 사진을 통해 우리 주변의 밤과 그 속에 부유하는 존재들을 깊이 있게 응시한다.
권 작가는 "야간행이란 작업은 북한산 시리즈 이후에 촬영 범위를 넓혀서 기후변화로 인해 이동하는 야생동물들이나 생명들을 추적하는 작업"이라며 "이후 '반짝반짝 빛나는' '파도' '허블'이란 작업까지 이어진다. 서식지나 촬영 장소 등에 따라 소설의 한 챕터처럼 막이 구분돼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권 작가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동물들이 바라본 시선도 함께 담았다.
그는 "영주 여우복원센터에서 태어난 한 마리가 6개월 동안 400여㎞를 걸어 해운대까지 갔다. 그 여우를 따라 저도 걸어서 해운대까지 가면서 여우가 봤던 장면들, 만났던 동물들을 기록했다"며 "3개월 정도는 해운대에 숙소를 잡아놓고 매일 8시간씩 여우를 만나기 위해 걸어다녔다. 그러면서 내가 다니는 지역에 사는 야생동물들,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을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흑백의 화면 안에 기후와 환경 변화를 겪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담는다.
그는 "까마귀도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 머물게 됐고, 사슴들도 도시로 나오고, 여우 역시 멸종위기다. 주변으로 밀려난 야생동물들, 도시에 거주하는 동물들이 저는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모습을 통해서 저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하고, 주변의 약자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엔 '허블'이란 작업을 통해 '대기감'이란 주제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허블 우주망원경에 쓰이는 반사경을 설치해 빛을 수집하는 작업이다. 다이크로익 반사경은 100개의 빛 중 96개는 투과시키고, 관측에 불필요한 나머지 4개는 반사한다. 저는 그 소외된 4개의 빛이 궁금했다"며 "우리가 관측하고 기록하지 않은 빛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는데, 그 빛들이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잊힌 기억과 잃어버린 기회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권 작가는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한다.
그는 "사진 옆에는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생각을 동물들의 시선에 기대 짧게 글로 표현했다"며 "이외에도 산불로 먹을거리를 잃은 산양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내용이나,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에 살게 된 까마귀들이 이동 모습을 3~4분짜리 영상으로도 작업했다"고 말했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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