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당원 여러분, 국민 여러분. 이재명 대통령을 의심하지 마시고 믿어주길 바란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청래가 지난 18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민생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 개편안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그동안 이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오해한 분이 '오해였다, 역시 이 대통령'이라고 안도하며 손뼉치는 모습을 보며 참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을 놀리려고 한 말일까? 아니면 '검찰 개편안' 문제로 불거진 여권 내부 갈등에서 사실상 압승을 거둔 것을 자축한 발언일까? 둘 다 아니라면, 당정청이 협의해 검찰 개편안을 발표함으로써 '당정청 일심동체'임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에 대한 기쁨의 표현일까? 선의 해석의 원칙을 적용해 이 세 번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해하자. 그런 조심스러운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민주당은 2월22일 의원총회를 열고 검찰청 폐지 후속 법안인 중대범죄수사청법(중수청법)·공소청법 정부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후 검찰을 섬멸해야 할 악(惡)으로 보는 강성 의원들이 "정부안으로는 검찰 개혁이 미흡하다"며 대폭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통령은 연일 절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내 의견만이 정의라는 태도는 실패 원인"(3월7일), "집권 세력이 됐다고 마음대로 다 할 수 없다"(3월8일), "필요한 개혁을 하더라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모두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결과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3월9일)고 했다.
이런 당부에 일관성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을망정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다. 그런데 3월10일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른바 '대통령 공소취소 거래설'이 튀어 나왔다. 대통령이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주고 검찰은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를 해준다는 음모론이었다. 이름 없는 유튜브라면 모를까 거대하고 막강한 팬덤의 지지를 받는 김어준의 유튜브가 아닌가. 이 음모론은 민주당을 둘로 쪼개면서 지지자들 사이의 격렬한 '내전'을 유발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월15일 민주당 초선 의원 초청 만찬에서 검찰개혁에 대해 "개혁이 그렇게 상대를 몰아친다고 되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고, 16일엔 정부의 검찰 개편안을 반대하는 여당의 강경파를 겨냥해 "본질과 괴리된 과도한 선명성 경쟁 때문에 해체돼야 할 기득 세력에 반격의 명분을 주거나 재결집 기회를 갖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3월17일 발표된 최종안엔 대통령의 그런 강력한 의지가 관철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놀랍게도 강경파의 완승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강성 당원들은 "우리가 해냈다"고 환호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대통령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에선 트럼프가 자주 강경 발언 후 물러서는 걸 풍자하기 위해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결국 물러선다)라는 말을 쓴다는데, '트럼프'를 '이'로 바꿔 LACO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나?
그런 의심이 들긴 하지만, '공소취소 거래설'이 고약한 함정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김어준이 일부러 그런 함정을 팠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선의를 믿는다 하더라도, 이 거래설 자체가 대통령에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는 면도 있었다. 2월23일 105명의 민주당 의원이 참여한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이 출범식을 가진 이후 대통령은 그걸 침묵으로 긍정함으로써 '거래설'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공소취소 거래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건 여권 내부에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돼 있었다. 그는 사실상 강경파에 '굴복'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생각을 종잡을 수 없고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평판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반면 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당론으로 정한 정부안을 밀어 붙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건 '공소취소 거래설'을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냈을 게다. 강경파가 주장하는 검찰개혁안에 종교적으로 집착하는 당원들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을까. 친명파 내부에서 "국정을 흔드는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청래는 3월18일 그런 '무책임한 선동'의 발원지인 김어준 유튜브에 나가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는 중수청 법안에서 매우 중요한 45조를 삭제한 것에 대해 "저희는 최대한 톤다운하거나 수정하려고 준비했다"며 "그걸 나름대로 고치려고 했더니 (청와대 측이) 통째로 들어내는 게 좋겠다. 통편집(하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45조는 중수청 수사관이 수사 개시 때 검사에게 통보하도록 한 조항이다) 그러면서 "제가 좀 속상한 것은 우리 지지자들도 대통령에 대해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는데, 대통령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왜 이 말을 듣는 순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들었던 명대사가 떠올랐을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그 명대사 말이다. 정청래는 자신이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칭찬하고 보증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이 고마워 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이제 겨우 취임 9개월 여를 지난 쌩쌩한 대통령인데 말이다. 대통령이 겨우 건진 검찰총장 명칭 유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냥 공소청장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일축했는데, 그간 "내가 검찰의 최대 피해자"임을 강조해 온 대통령으로선 모욕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윤석열이 자폭을 했고, 그 뒤를 이어 국민의힘의 장동혁 체제 역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 같으니, 집권 여당으로선 내부 권력투쟁도 벌이는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윤석열은 1시간에 59분을 혼자 떠들다가 망했지만, 1시간 내내 경청하는 척 해놓고도 상대방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딴말을 하면서 늘어놓는 찬사는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겸손한 자세로 진지하게 소통하는 당정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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