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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선의 심심한 이야기] 먼옷에 관한 생각

2026-03-25 06:00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는 몇십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이제 백세시대를 언급하는 경우를 쉽게 본다. 그래서 환갑은 물론 칠순도 그저 수많은 생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주변에 환갑을 기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 세기 전에만 해도 환갑 때는 큰 잔치를 했었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자신이 다시 태어난 해를 맞이하는 의미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딸아이 혼례를 준비하면서 한복을 맞추러 갔었다. 요즘 유행하는 갖가지 장식을 붙이지 않은, 단순한 연분홍 치마에 진분홍 저고리로 한 벌을 장만했다. 옷감은 합성 섬유가 섞이지 않은 비단으로 골랐다. 좋은 날에 화사하게 입을 옷이었지만 나는 그 날 이후까지 생각하면서 소재와 디자인을 선택했다.


내 고향 예천에서는 수의(壽衣)를 '먼옷'이라 불렀다. 먼 훗날에 입을 옷이라는 뜻이 담겼으리라 짐작한다. 아니면 먼 곳에 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밀쳐두고 싶은 대상이니 옷에도 멀다는 의미를 붙였으리라.


환갑이 되는 해에 나는 먼 옷을 준비할 생각이다. 이미 준비해둔 비단 한복에 추가해야 되는 것들을 생각하는 중이다. 전통적인 수의 구성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가짓수를 줄이고, 죽은 이의 몸 상태에 맞게 필요한 것들은 빠트리지 말고 갖춰서 잘 보관할 예정이다.


딸 혼례 때는 한복 안에 합성섬유로 만든 화려한 페티코트를 입어 치마를 한껏 부풀렸지만 한복을 수의로 쓸 때는 질 좋은 천연섬유로 속곳과 속치마를 만드는 식으로 소재와 디자인을 바꿔야 된다. 손을 감싸주는 '악수(幄手)'에는 예쁜 수도 놓아볼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을테니 멱목(幎目)은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해본다.


벗들에게 죽었을 때 어떤 옷을 입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대부분 "평소에 입던 옷"이라고 대답한다. 죽은 이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평소에 입던 옷을 수의로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스님밖에 없다. 옷은 T.P.O에 맞게 입어야 한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경우에 맞춰서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원칙은 죽은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다.


이렇게 먼옷에 관해, 내 환갑 계획에 대해 쓰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된다. 한복을 장만하던 때보다 몸무게가 늘어서 옷고름을 맬 수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먼옷을 어떻게 만들지 궁리보다 지금 당장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과연 나만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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