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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창] 지방출신이기 때문에

2026-03-25 06:00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오래전에 소설가 K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방출신들은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면 왠지 비감한 기분에 빠지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순간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느꼈던 이상한 박탈감 같은 게 떠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버스 대신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게 되었지만 본가가 있는 고향을 떠나 상경하는 순간에는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왜 그럴까. 얼마 전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한 편의 시를 읽다가 고향을 떠나 상경한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본 적이 있다, 강성은의 '밤기차' 전문을 옮겨본다.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 잠깐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옆 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깨보니 다른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깼을 때 또 다른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기차는 멈춰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과 우산을 챙겼다 기차에서 내리자 겨울밤의 냉기가 밀려왔다 사람들을 뒤따라 계단을 오르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역이었다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쌓인 눈 위로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뒤돌아보니 기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군가 날 깨워 주길 바랐다


떠밀려가는 듯한 삶의 모습이 있고, 어딘가 낯선 곳에 내려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몽롱한 꿈처럼도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대학생이 되어 상경하고 나서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를 세어본 적이 있다. 이십오 년 사이 열 번이 넘었다. 그 사이 통성명 한번 나눈 적이 거의 없는 나의 옆집 사람들은 계속 바뀌어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랬다. 이는 당연히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돈과 직장의 문제 때문에 떠밀려 살게 된 결과였다. 지금은 수도권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연고도 없는 이 낯선 지명의 현거주지에 집을 구해 살게 될지는 십 년 전에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소설가 Y는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모임을 유지하며 즐겁게 노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준다. Y의 고향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Y는 유년부터 지금까지 고향인 수도권의 한 도시를 떠나 살았던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오랜 친구들과 우정을 지속적으로 쌓을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었다. 이렇듯 고향을 떠나는 삶과 고향을 떠나지 않는 삶 사이에는 생각보다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이 이뤄놓은 많은 가능성과 관계들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읽은 한 중국사회학자의 책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에는 지방출신들이 대도시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자기 부정의 감각이 아프게 서술되어 있었다. 지방출신들은 자신의 삶의 배경을 끊어내려 노력하게 되며, 그 노력이 생활의 여유를 빼앗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활이 이어져오던 삶의 영역이 지닌 풍요로움을 잃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기를 부정하고 고향과 더불어 자신 스스로를 낯설어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무언가를 들킨 듯한 화끈거림과 지역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한 화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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