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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저점매수

2026-03-25 06:00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요즘 심기가 영 불편하다. 송곳처럼 치솟는 '코스피 6000' 시대. 이 찬란한 시절에, 나는 주식 한 주 없는 가난한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주식들은 3년 전 대구로 내려올 때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 공사 자금에 보탰다. 요즘 유행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은 정확히 나를 가리킨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프다.


"후인, 작품 호당 단가 그대로인가요?" "…조금 올렸어요." "어서 대작가가 되시길…."


주황색 헤드셋을 낀 초록색 플라스틱 부처의 머리.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자산' 중 하나는 후인 작가가 선물해준 이 부처 그림이다. 8호쯤 되는 크기로, 내 생애 처음 소유한 미술 작품인데 묘한 분위기가 있어 꽤 마음에 든다.


후인. 본명 박현지. 밀가루 반죽 같은 '도우(Dough)'라는 가상의 물질로 인간 욕망을 표현하는 그녀와는 2년 전 밤샘 작업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후인은 진로를 고민하던 졸업반 미대생이었고, 나는 연고 없는 도시에 막 내려온 초보 사장이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와 유락은 전형적인 '오몰로지(Homology)' 관계였다. 쉽게 말해 각자의 분야에서 비슷하게 '뭣도 없는 처지'였고, 그녀와 유락의 협업은 서로의 '상징 자본'을 교환하며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제휴였던 셈이다(물론 후인 작가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디지털 프린트된 작품을 조각내 키링을 만들고, 이를 팔아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프로젝트 피스PIECE'부터, '대구 앙데팡당展', 초대장 기반 아티스트 네트워크까지. 아티스트 페이지를 무료로 제작해주는 'CV 만들어드립니다'와 '유락 아티스트 인터뷰'의 첫 손님도 후인 작가였다.


이 '저점 매수'의 결과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걸까. 최근 후인 작가는 지드래곤(GD)의 저스피스 재단이 선정한 신진 아티스트로 뽑혀 서울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말하자면 'GD 픽' 작가가 된 셈이다. 그동안의 협업이 그녀의 이력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 지레짐작하며 혼자 흐뭇해하곤 한다.


유락 주변에는 여전히 장편 영화를 찍고도 배급처를 구하지 못한 감독,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무용수 등 저평가된 예술가들이 맴돈다. 이들이 어서 유명해지길, 더 잘되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가진 소중한 '상징 자본'도 함께 커질 테니까. 이것도 어떤 면에선 투자일 게다. 이런 생각을 하면 그제야 배가 좀 덜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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