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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窓] 미숙아를 살려낸 대가

2026-03-27 06:00
황인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르네여성의원 원장

황인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르네여성의원 원장

임신 26주, 체중 900g.


의학적으로는 아직 태어나지 말아야 할 시기에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다. 예정일보다 석 달 이상 일찍 태어난 이 작은 생명은 단순히 체중만 작은 것이 아니다. 폐는 충분히 펴지지 않았고, 심장은 아직 잘 연결되지 않았으며, 혈관은 약하고, 뇌는 외부 환경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태의 아기를 살려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현대 의학의 개입으로 겨우 가능해진 결과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당연한 기준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초저체중미숙아가 살아남으면 기적이라 말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장애 없이 퇴원하지 못하면 누군가의 잘못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26주, 900g 미숙아의 동맥관개존에 대한 수술결정이 늦어져 뇌출혈이 발생했고 그 결과 뇌성마비가 생겼다는 이유로 병원 측에 거액의 배상 책임이 주어졌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미숙한 아기가 아무런 합병증 없이 성장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심장에서 나가는 혈관의 문제가 왜 뇌출혈로 이어졌다는 걸까.


미숙아는 단순히 작은 신생아가 아니라, 아직 태아로 더 머물러야 할 시기에 밖으로 나온 존재다. 뇌출혈은 특별한 실수가 없어도 발생할 수 있고, 괴사성 장염 역시 최선을 다해도 막기 어려운 합병증이다. 수술도 어렵고 마취도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안고 태어난 생명을 살려내는 것 자체가 이미 의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에 가깝다.


과거에는 더 작은 아기를 살려냈다는 소식이 뉴스가 되었고 의료진은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현장에 있던 의사에게 돌아간다.


의료는 확률의 영역이다. 특히 미숙아 치료는 더욱 그렇다. 같은 주수, 같은 체중이라도 결과는 매번 다르다. 어떤 아기는 아무 문제 없이 퇴원하지만, 어떤 아기는 최선을 다해도 장애를 남긴다. 그 차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의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판결은 마치 모든 결과가 의사의 선택 하나로 바뀔 수 있었던 것처럼 전제한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판단을 하고,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수행했어야 한다는 기준이다. 그것은 의료라기보다 초능력에 가까운 요구다.


이런 기준이 반복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위험한 환자를 보는 의사가 사라진다.


초미숙아, 중증 외상, 고위험 분만, 응급 수술. 결과가 나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소송의 위험은 커지고 책임은 무거워진다. 그 책임이 개인에게만 돌아오는 구조라면 결국 아무도 그 자리에 서려 하지 않는다. 이미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고 있다.


물론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아이가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현실 앞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실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의학의 한계와 위험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결국 사라지는 것은 의사뿐만이 아니라 필수의료 그 자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모든 결과에 책임자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위험한 환자라도 끝까지 살려내려는 의사가 남아 있는 사회를 원하는가.


기적은 언제나 당연하지 않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초능력을 요구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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