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위생 행위가 아니다. 인류 문명이 물을 어떻게 삶 속에 불러들이고 그 안에서 어떤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다. 그 시작은 기원전 2500년경 고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 남쪽에 있는 도시다. 유적 중앙에 벽돌로 만든 '대욕장'이 있다. 정교하게 구워낸 벽돌 사이마다 역청을 발라 완벽한 방수 시스템을 구축한 당대 공학의 정수다. 이곳은 사제와 지배 계급이 종교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몸과 영혼을 정화하던 신성한 제의 장소였다. 문명의 질서를 세우는 기점이 된 것이다.
로마에서 만날 수 있는 공중 목욕탕 '테르마에(Thermae)'는 제국의 도시 생활 중심 공간이었다. 수도교를 통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물을 끌어오고, 온돌과 유사한 하부 난방 시스템인 '히포카우스툼'을 이용해 대규모 목욕 시설을 운영했다. 특히 카라칼라 욕장과 같은 거대한 복합 문화 공간에서는 목욕뿐만 아니라 독서, 운동, 사교 활동이 함께 이루어졌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몸을 씻는 한편, 도서관과 체육관에서 지식을 나누고 정치를 논했다. 그곳은 제국의 번영을 과시하는 상징이자, 다양한 계층이 교류하며 정보를 교환하던 거대한 사회적 용광로였다.
로마의 몰락 이후 유럽에서는 공중목욕 문화가 쇠퇴하고 위생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역병에 대한 공포와 나체를 기피하는 기독교적 신체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욕 문명의 흐름은 이슬람 세계의 '하맘(Hamam)'이라는 목욕탕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하맘은 특히 여성들이 집안사를 논하고 미용과 생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18~19세기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은 이러한 일상적 공간을 왜곡했다. 장 오귀스트 앵그르 같은 화가들은 하맘을 남성적 욕망이 투영된 에로틱한 밀실로 재현했다. 여기에 양귀비와 현종의 '화청지'와 같은 중국 궁정의 목욕 이미지마저 결합되면서, 동양의 목욕 문화는 점차 관음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왜곡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변주되었다. '터키탕'이라는 명칭이 음란하고 퇴폐적인 공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것이 그 예다. 동양의 목욕 문화를 성적으로 왜곡해 온 서구적 시선을 비판 없이 역수입한 결과였다. 결국 하맘이 지니고 있던 정화 의례와 공동체 문화는 지워진 채, 타자를 대상화하는 왜곡된 욕망의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이는 문명사적으로 명칭이 본질을 심각하게 오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19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상하수도가 보급되며 목욕은 은밀한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었다. 현대인은 깨끗한 몸을 얻은 대신, 타인과 온기를 나누던 공동체적 시공간을 상실하게 되었다.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이라는 작품에서 '사라져가는 오스만적 삶의 흔적'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하맘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의 K-목욕 문화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찜질방과 대중목욕탕은 고대 테르마에의 사회적 기능과 하맘이 쟁여 둔 집단적 기억을 현대 도시 속에서 성공적으로 복원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은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다'고 읊조린다. 문명이 벗겨진 날것의 상태에서 일상의 긴장을 무장해제한다. 타인과 등을 맞대고 정을 나누는 이 공간은 이제 단순한 세정의 자리가 아니다. 고단한 영혼을 어루만지고 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어내는 현대판 정신적 휴식처이자 영혼의 오아시스로서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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