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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시와 함께] 김언희 ‘얼음여자’

2026-04-06 05:00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보여주마


얼음답게, 몸 속을


드나드는 톱날들을 환히


보게 해주마


물이 되는 살의 공포, 나를


썰음질하는 실물의


톱니들을


만지게 해주마…… 얼음


톱밥, 물이 되는


시간의 닭살들을



보통 해빙이라고 하면 따뜻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통해 부드럽게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얼음이 물이 되는 과정은 톱날에 의한 절단을 통해서이다. 화학적 과정을 물리적 과정으로 바꿔놓고 있는 것인데, 얼음이 화자의 몸이기에 그 충격은 한층 가중된다. 화자는 자신의 몸을 얼음으로 유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폭력을 선연한 공포의 순간으로 바꾸어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폭로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화자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유동성이자 세계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착화된 폭력이 당연시하는 현실적 조건들을 요동치는 현장으로 바꿔놓는 것이며 그 충격을 통해 유연함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될 수 있을 것이다.


기껏 유가나 주가로 환원되는 먼 나라의 전쟁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가는 지극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곤 한다. 이 시가 쓰여졌던 20년 전 가부장제 속에서의 여성들의 공포와 죽음은 지금 낯선 타지에서 소수의 돈과 이권을 위해 희생되는 숱한 사람들의 고통에까지 연결되어 있다. 요컨대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연시하는 그 익숙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봄꽃이 공중을 가른다. 그 틈에서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연루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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