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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연경서원, 대구 정신의 복원이다

2026-04-06 18:00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재직 중인 연구원에서 이어온 독서회는 스무 해 가까이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도 화면을 사이에 두고 책을 펼쳤고, 비대면 환경 속에서도 배움과 토론은 이어졌다. 얼마 전에는 이 시간을 묵묵히 후원해 온 지역 기업에 감사패를 전했다. 사회공헌이란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내는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 시간을 함께 지켜 온 지역 기업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처럼 이어져 온 시간은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 속 '강학'의 전통을 떠올리게 했다.


조선시대 서원에서 강학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향이 선현을 기리는 의례였다면, 강학은 살아 있는 학문을 이어가는 실천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경전을 읽고 토론하며 삶의 기준을 세워 가는 과정은 공동체를 단단히 묶었고, 지역의 정신을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전통은 지역마다 고유한 문풍으로 이어졌으며, 대구 역시 그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16~17세기에는 대구를 포함한 영남 지역에서는 유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누정을 중심으로 한 강안문학이 형성되고, 학문과 교유가 어우러진 문화적 흐름이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경서원은 지역 유학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했다.


1563년(명종 연간)에 창건된 이 서원은 대구 지역 초기 서원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보다 뒤에 세워졌으나, 달성 도동서원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되어 지역 유학의 이른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초기에는 강학 기능에 무게를 두며 학문 활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황을 주향으로 정구와 정경세를 배향하며 퇴계학의 계통을 잇는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효종 대에는 사액을 받아 그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 공간을 넘어 학문이 현실로 이어지는 장이었다. 이 지역에서 배출된 유림들은 전란의 시기 의병으로 나서며 학문이 삶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지역 유학의 흐름을 이어갔다. 또한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이후에도 이 서원은 지역 학문과 교육의 거점으로 기능하며 대구의 학술과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축적은 오늘날 대구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학문의 전통은 큰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연경서원을 다시 세우려는 이유는 단순한 건축의 복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대구에 이어져 온 문풍과 조선 성리학의 학맥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데 있다. 이 복원의 의미는 우리 모두가 함께 새겨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연경서원이 복설될 예정인 곳은 도심의 주거단지다. 전통적인 산수형 서원과는 다른 입지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과거의 서원이 학문과 공동체의 중심이었듯, 이곳 역시 시민이 쉽게 찾고 배우며 교류하는 평생학습의 장이자 지역 정신을 이어가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해야 한다. 이는 강학의 전통을 오늘의 삶 속에서 이어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이 서원이 중요한 이유는 왕의 사액에만 있지 않다. 그 본질은 대구의 학문적 뿌리와 정신이 이곳에 응축되어 있다는 데 있다. 복원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무는 일이 아니다. 이는 지역의 정신을 다시 세우는 일이며, 결국 대구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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