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 출신 창업가, “지역 창업 지원 경쟁 덜해 다양한 지원 받을 수 있어 장점”
2m 소형 이산화탄소 포집기 ‘CCUbe’ 개발, 구독형 서비스 도입…초기 설비 부담 및 운영 리스크 해소
포집 탄소를 ‘탄산칼륨’으로 즉시 자원화…4월 B2C 핸드워시 론칭해 글로벌 생태계 정조준
2026 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된 이지은 <주>리필 대표.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기술은 논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2026년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30세 미만 30인(30 Under 30)' 소셜 임팩트 부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주식회사 리필의 이지은 대표는 기후위기 대응 기술의 현장 적용성을 거듭 강조했다. 부산 출신으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기초학부를 졸업한 그는 대학교 3학년이던 시절 일찌감치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약 4년간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화학 공정을 연구하던 중 "이 기술이 실제로 쓰일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의문이 창업의 뼈대가 됐다. 이 대표는 "과학기술이 논문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체감되는 방식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실을 벗어나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지역 창업 생태계가 든든한 기반이 됐다. 이 대표는 대구 지역의 인프라에 대해 "수도권에 비해 시장 규모나 네트워크 측면에서 경쟁력이 다소 제한적인 부분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덜해 다양한 지원사업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초기 창업자들에게는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전략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5년간 이산화탄소 포집을 연구한 김지현 CTO, 30년 경력의 환경 설비 설계 전문가인 박만호 총괄 등 각자 전문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어벤져스' 팀원들을 합류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리필이 주목한 시장은 기존 대형 탄소 포집 기술이 구조적으로 배제해 온 '분산형 배출원'이다. 그동안의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은 ㎞당 10억~20억 원에 달하는 값비싼 가스 운송 인프라 구축 비용과 넓은 부지를 요구해 대형 산업 플랜트 중심으로만 설계돼 왔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20% 이상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건물이나 병원, 상업시설, 중소 산업설비 등 넓게 퍼져 있는 배출원에는 높은 자본적 지출(CAPEX)과 운영 비용(OPEX)의 한계로 인해 기술 적용이 불가능했다.
이 대표는 이 사각지대를 겨냥해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2m 내외의 소형 모듈형 이산화탄소 포집 기기인 'CCUbe'를 시장에 내놨다. CCUbe 1차 시제품 제원은 가로 2m, 세로 0.9m, 높이 1.7m 수준이다. 특히 보일러 연소가스 배기관에서 일부 가스만 이동하는 바이패스(Bypass) 라인 연계 방식을 채택해 기존 보일러 가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공사 비용과 운영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장비 내부 반응열과 폐열을 회수해 보일러 온수 예열에 활용함으로써 도시가스 사용량을 약 6% 절감하는 효과도 입증했다.
기술적 소형화에 그치지 않고 시장 진입의 최대 장벽인 '비용' 문제도 비즈니스 모델 전환으로 풀었다. 리필은 설비를 직접 판매하는 대신 '서비스형 탄소 포집(CCaaS)'이라는 구독형 모델을 전면 도입했다. 수요처는 장비 구매나 설치 등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월 600만 원의 구독료와 실비 수준의 전기비만 지불하면 된다. 리필이 기기 설치와 운영, 정비를 총괄하며 온실가스 측정·보고·검증(MRV) 리포트까지 자동으로 생성해 제공한다. 저온·저압 운전 방식을 통해 외부 증기나 대형 가스 냉각 장치가 불필요하며, 용매 재생 공정이 없어 기존 글로벌 경쟁사 대비 OPEX를 76.6% 수준으로 대폭 감축했다.
이러한 구독 모델은 환경(E) 배점이 기존 대비 2배 이상 확대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ESG 경영평가 수요와 정확히 맞물린다. 해당 기관들은 ESG 지표 1~2점 차이로 경영평가 등급이 변동되며, E등급 또는 2년 연속 D등급일 경우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이 될 정도로 민감하다. 2025년 기준 13개 공공기관이 관련 평가로 기관장 경고 조치를 받은 반면 A등급 기관은 성과급 100~120%가 지급된다. 리필의 서비스는 월간 CO2 처리량, 장비 가동률 등 정량 지표를 제공하여 이들의 실질적인 ESG 평가 방어를 돕는다. 현재 다수의 공기업 및 대기업과 파일럿 테스트 및 도입 검토를 진행 중이다.
리필 사업 구조의 핵심 경쟁력은 포집한 탄소를 버리거나 이송하지 않고 현장에서 즉시 '탄산칼륨'으로 전환해 자원화한다는 점이다. 탄산칼륨은 세정제, 소화약제, 의약, 유리 공정 등 다양한 산업 전반에서 쓰이는 범용 무기화학 소재다. CCUbe 1대당 90% 이상의 포집 효율을 바탕으로 연간 40톤의 탄산칼륨을 생산해 내며, 리필은 이를 도소매로 시장에 판매해 추가적인 캐시카우를 창출한다.
2026 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된 이지은 <주>리필 대표.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이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 포집이 확산되지 못하는 가장 큰 허들은 결국 경제성"이라며 "단순히 탄소를 저장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포집된 탄소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방향이 필요했다"고 분석했다. 탄소를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전환함으로써 탄소 감축 활동을 비용이 아닌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B2B(기업 간 거래)와 B2G(기업과 기관 간 거래) 시장에서 검증을 마친 리필은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B2C 시장으로 밸류체인을 확장한다. 자사의 CCU 탄산칼륨 원료를 적용한 자체 핸드워시 브랜드 'nuee8(뉘에8)'을 오는 2026년 4월 공식 론칭할 예정이다. 프랑스 뤽상부르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향을 적용했으며, 인체적용시험을 통해 저자극 판정도 완료해 초도 생산을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기술은 산업 현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일상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직접 탄소가 자원이 되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B2C 진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스타트업 'CleanO2'가 이미 포집 탄소로 만든 비누를 통해 연 매출 75만 달러를 기록하며 영국과 호주로 수출하는 등 해당 CCU 밸류체인의 시장성은 글로벌 단위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30년 107조원 규모로 성장이 전망되는 글로벌 친환경 기술 시장을 무대로 리필은 잰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26년 국내 시장 진출 본격화를 시작으로 2027년 누적 판매 4대, 2028년에는 미국과 유럽, 베트남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해 누적 10대를 판매하겠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 대표는 "향후 국내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적용 가능한 표준화된 솔루션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단순히 기술을 보급하는 것을 넘어, 탄소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비전"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이동현(경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