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
176명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한꺼번에 죽었다. 미군의 표적 설정 오류가 빚은 참극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오폭을 이란이 벌인 짓이라고 태연하게 변명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사일을 비롯한 미국산 폭탄이 이란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가고 있다. 이란 전쟁의 여파는 우리 코앞에까지 번지고 있다. 에너지 비용이 치솟고 주가가 내려가고 공장의 기계가 멈춰서도 미국을 향해 전쟁을 당장 멈추라고 소리치는 이는 드물다. 미국의 기세에 짓눌려 심장이 졸아든 것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가물가물하던 대한민국의 운명은 미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났고, 그 이후 양국은 혈맹의 관계로 발전했다. 보통 전쟁은 정의를 앞세우고 진행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오류도 적지 않다. 내 고향 예천에도 미군의 충격적인 실수가 있었다.
1951년 1월19일이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인민군의 대공세가 이어지자, 유엔군 사령부는 백두대간 남쪽 지역 게릴라 소탕 작전의 일환으로 전투기의 공중 폭격을 지시했다. 적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지체 없이 파괴하라는 명령이었다. 대구비행장에서 출격한 미군 폭격기는 오전에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일대에 폭격을 가해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70%가 13살 이하 어린이였다. 또 미군은 오후에 학가산 아래 마을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를 세 차례 폭격해 남성 18명과 여성 33명 등 모두 51명이 같은 날 숨졌다. 미군은 '흰옷 입은 다수의 사람들'이 민간인인지 적군인지 확인하지 않고 폭격을 가한 뒤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
전쟁 후 아무도 이 억울한 죽음을 발설하지 않았다. 미국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일마저 미국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듯이. 다행히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대대적인 조사 활동을 벌인 덕분에 이 사건은 지하에 묻혀 있다가 현실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위원회는 산성리 사건에 대해 미군의 오폭을 인정하고 2007년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산성리 마을에 위령비도 세워졌다. 나는 2020년에 귀향한 직후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폭격이 이루어진 진평리 사건에 대해서는 2010년 '진실 규명 불능'으로 판정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성격에 따라 정부 소속 기관의 판단이 다르다는 건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진평리를 찾아가 몇 분 노인들의 증언을 들었고 당시 김홍년 이장을 만나 정부에 재심을 요구해 보자고 제안했다. 서둘러 서류를 갖춰 보냈으나 그때의 요청에 대해서 진실화해위에서는 여태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
진평리는 천연기념물 석송령이 있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에 둘러싸인 마을에 올해도 봄이 오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억울한 떼죽음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몇 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말없이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위령탑이라도 세워야 할까. 뜻이 있는 분들에게 알려서 해마다 제사라도 올려야 할까. 진달래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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