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웅기자
"이제는 좀 드러내도 안 되겠습니까."
최근 대구의 아침 출근길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파란 유니폼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민주당 지지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오랫동안 침묵과 인내를 전제로 하는 영역이었다. 그런 이른바 '샤이 민주'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전개되는 배경에는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라는 커다란 우산이 있는 듯하다. 거물 정치인의 재등판은 곧장 기초의원 선거구까지 당선 기대감이 번지는 강력한 '낙수효과'도 부르는 모습이다. 그간 출마 후보 구하기도 버거웠던 민주당이 대구에서 기초의원 2인 선거구 경선까지 치르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기존 대구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선 가능성이 떨어지는 2인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소위 '넘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당당한 드러냄 뒤에는 냉정하게 짚어야 할 역설이 숨어 있다. 시민들은 민주당을 향해 지지 의사를 드러내고 있는데, 정작 표를 바라는 후보 개개인의 '역량'은 충분히 표출되지 않고 있어서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최고의 선거 운동은 총리 지지율 상승'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은 눈치다. 거물 뒤에 서서 안정적인 구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지금의 활기가 지역을 바꿀 구체적인 비전보다는 거물의 후광에 기댄 일시적이고 내부적인 현상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은 경선 소식을 대외에 알리는 데 신중하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적 침묵' 탓에 후보들이 주민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공약을 계획 중인지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우산이 너무 크면 그 밑에 서 있는 사람의 구체적인 얼굴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활기는 민주당이 거둔 성취에 대한 찬사라기보다, 정체된 지역 보수 정치권의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임계점을 넘으며 빚어낸 결과물에 가까워 보인다. 낙수효과에 젖어 정작 대안 세력으로서의 구체적인 비전 제시법을 잊는다면 지금의 변화는 한때의 소나기에 그칠 수 있다.
투표함 뚜껑이 열리고, 커다란 우산이 접히는 순간에도 시민들의 박수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려면 거물의 후광에 기대기보다 후보 각자가 스스로 증명해 낼 '드러난 실력'이 동반돼야 한다. 지지의 무게만큼이나, 그것을 담아낼 그릇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진짜 과제다. 최시웅 기자<사회1팀>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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