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슬픔
밀도 높은 시어로 담아내려 해
의성어·의태어 진부하다지만
자연과 소통하는 본질적 언어
사윤수 시인 <본인 제공>
'아침에 눈을 뜨면 슬픔이 먼저 출근해 복무하고 있다'('단골과 목어' 중).
이토록 서늘한 시구를 건네는 시인이 있다.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사윤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를 들고 7년 만에 돌아왔다.
'에돌며 많은 것을 지불하고 겨우 얻은 한 뼘 창가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비극을 생각하면 한 뼘조차 써늘하니, 그저 모든 것 시의 손길에 맡긴다'('시인의 말' 중). 그렇게 한 뼘 창가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문장들이 담긴 이번 시집은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으며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다섯 줄짜리 '시인의 말'을 쓰는 데 한 달간 조사 하나까지 고쳐가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스스로를 '슬픔의 전문가'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시인에게 이번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이번 시집에서도 의성어와 의태어, 동음이의어의 사용이 눈에 띈다. 시적·정서적 밀도를 해칠 수 있는 이 장치들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사윤수 시인 <본인 제공>
"요즘 문예창작과에서는 진부하다면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더라. '낯설게 하기'라는 미학적 관점에서 이해되긴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르다. 우리를 업어 키운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정서 속에는 '자장자장' '달강달강' 같은 소리가 있었다. 자연에는 언어가 없지만 우리는 소리로 자연과 소통한다. 이와 같이 저에게 의성어와 의태어는 자연에서 온 본질적인 언어다."
▶그렇다면 유독 낯선 단어나 조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문 명사가 너무 많아 우리말로 풀어쓰려고 노력한다. 철학자인 김영민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일종의 '낯설게 하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이라기보다 김영민 선생의 책을 평소에 많이 읽으며 내면에 누적된 언어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결과물이다."
▶시집 곳곳에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 있다. 해설을 쓴 장정일 시인도 시인의 비관적 세계 인식의 뿌리를 궁금해 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만 봐도 그렇지 않나. 저 역시 비극적인 가족사 등 삶의 굴곡을 거치며 '슬픔의 전문가'적인 인생을 살았다. 이러한 삶의 본질적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독서를 통해 얻은 영감을 밀도 높은 시적 언어로 담아내려 했다."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
▶시집 제목인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에서 '씨앗 한 되'는 비극 속에서도 기어코 길어 올린 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사실 원래 시집의 제목은 '앵두장수가 쥐여준 슬픈 씨앗 한 되'였다. 출판사 편집 과정에서 바뀌게 됐다. 앵두장수는 어떤 사람을 기만하고 속이면서 등을 치고 도망가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 인간의 삶이 앵두장수에게 속으며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
▶그럼에도 '슬픔 한 포대'라는 시에서의 '슬픔을 널어 말린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삶은 본래 슬픈 것이지만 깊은 슬픔에 빠지거나 슬픔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슬픔을 '널어 말린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습기찬 슬픔을 볕에 말려 '쓸 만한 슬픔'으로 골라내는 것, 그것이 제가 삶을 긍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삶이 슬픔 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이치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슬픔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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