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한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어느 순간부터 말수도 줄고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출근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고, 구치소에 접견 신청을 했다가도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취소한 적도 있었다. 내가 참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는 국선전담변호사로서 형사 국선변호만 하는데, 나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니 내가 하는 일도 보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피고인들이 더 빨리 알았다. 피고인으로부터 전문가인데 전문성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면서 더욱더 일하기 싫어지고, 실수가 늘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착한 명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착한 마음을 먹고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면 긍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를 한 다음 일할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끌어올린다. 계속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 정말 잘해보고 싶어"라고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어느 날 진짜 내가 맡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 와중에 보이스피싱 조직원인 피고인 19명 사건을 국선으로 맡게 되었다. 피고인들의 잘못은 크지만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회복해 드리고 사죄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위로를 해드렸고 잘못에 비해 드리는 금액이 부족해서 죄송하지만 합의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마음을 좀 내려놓고 말씀드렸다. 정기적으로 여러 명씩 피고인들을 접견하고, 가족과 소통했으며 피해자분들과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내가 이 보이스피싱 조직범 사건을 성실히 변론 해준다고 사회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의 내 역할, 내가 해야만 하는 일만큼은 담담하고 성실하게 해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하루는 그 조직의 한 피고인이 "내일 재판이니까 오늘 마지막일 것 같아서 인사드립니다"라고 하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했다.
"변호사님, 저는 별건하고 합하면 재판 여러 번 받는데요, 지금까지 변호사를 썼다고 생각했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변호사님한테는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징역 받아 놓은 게 길지만 생활 잘하고 출소해서… 정말 똑바로 살겠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도 쑥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을 텐데….
스쳐가는 국선 변호인일 뿐인 내 앞에서 '똑바로 살겠다'고 하며 팔로 눈물을 훔치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김○○씨. 그런 생각이 들어도 말을 할 수도 있고 말을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말을 저한테 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그런 말이 필요했거든요." 나도 그 말을 하는데 눈물이 났다.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신이 다녀간 순간'이 있다고 한다. 비록 나쁜 일은 했지만 그 사람이 그 말을 해주었을 때만큼은 나는 나에게 작은 보람을 주려고 신이 잠시 다녀간 시간이라고 느꼈다.
'착한 명상'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좋은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마치 연기자처럼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우울함이 많이 나아졌다. 요즘은 고마운 사람도 많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나 시간, 내 환경, 자연에 감사하고 미안하고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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