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미식축구팀 창단 후 43년 만의 은퇴
‘한국 미식축구 80년사’ 기록으로 남긴다
대구에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 건립이 꿈
'한국 미식축구의 대부'로 불리는 박경규 경북대 첨단생물산업기계공학과 명예교수가 제자들의 이름이 적힌 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지난 50년간 경북대 캠퍼스를 지키며 '한국 미식축구의 대부'로 불리는 박경규 경북대 첨단생물산업기계공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월 정들었던 경북대 미식축구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1983년 팀 창단 이후 무려 43년만이다.
박 교수의 인생은 한국 미식축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8년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대 농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AFKN을 통해 미식축구의 매력에 빠졌다. 1966년 서울대 입학 후 미식축구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그는 카투사(KATUSA) 복무 시절 미군 미식축구팀 매니저로 활동하며 본토의 선진 미식축구를 몸소 체험했다.
최근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영남일보와 만난 박 교수는 "군복무 중 미군 선수들과 몸을 부딪치며 체격 차이를 절감했다. 뼈가 안 부러진 게 다행이었지만(웃음), 진짜 미식축구를 경험한 값진 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73년 서울대 대학원 시절, 방한한 일본 관서학원대학 팀으로부터 미국식과는 또 다른 세밀한 전술을 배운 경험은 그가 한국 실정에 맞는 미식축구를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계기가 됐다.
1976년 경북대에 부임하며 대구에 뿌리를 내린 그는 1983년 마침내 경북대 미식축구팀을 창단했다. 제대로 된 미식축구 장비 하나 없던 시절, 서울 이태원과 부산을 누비며 미군이 남긴 중고 장비를 구입했고, 직접 운동장에 선을 그으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아내는 데이트 시절부터 미식축구밖에 몰랐던 남편을 보며 자신을 '풋볼 위도우(미식축구 과부)'라 불렀지만, 박 교수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박 교수는 감독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미식축구를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현재 그는 2004년부터 집필해온 '대한 미식축구 80년사(가제)' 원고를 마무리 중이다. 70% 이상 완성된 이 책은 한국 미식축구의 발자취를 집대성한 기록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자리한 경북대 미식축구팀 사무실 벽면에 영남일보 등 언론에 소개된 지역 미식축구 관련 기사가 스크랩 돼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경북대 미식축구팀 지휘봉을 넘겨받은 후임은 경북대 04학번 쿼터백 이민우씨다. 제자에게 팀을 맡겼지만 미식축구를 향한 박 교수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대구에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을 건립하는 것이다. 50~60년 된 헬멧과 유니폼, 빛바랜 대회 팸플릿과 일지 등 그가 평생 모아온 수천 점의 자료가 그 꿈의 배경이다. 박경규 교수는 "평생을 수집한 자료지만 누군가 정리해주지 않으면 사라질 역사다.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와 미식축구의 역사를 보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미식축구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주문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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