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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경산속에 살아있는 발해

2026-04-13 06:00
김진욱 논설위원

김진욱 논설위원

경북 경산에 '발해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1주일 전이다. 지역언론에 35년째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9년 전 러시아 연해주를 찾았을 때, 예전 발해 땅이었던 광활한 벌판 앞에서의 감동을 기억하기에 더욱 그랬다. 이제야 알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발해마을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저께 찾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의 발해마을은 9년 전 전율을 다시 불러냈다. '발해마을'이라고 쓰인 표지석, 대조영을 기리는 사당·흉상·벽화가 연해주 발해 땅과 겹쳐졌다. 소박한 농촌 마을이지만 곳곳에서 발해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이곳은 사람이 떠나고 없는 유적지가 아니라, 발해의 기억과 후손들의 삶이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점도 특별했다.


발해마을은 대조영의 후손으로 알려진 영순 태씨 집성촌이다. 고려사에 대(大)씨와 태(太)씨가 혼용되면서, 대조영의 후손이지만 태씨 성을 가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16세기 후반에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한 뒤 40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도 30여 가구 80여 명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발해마을의 의미는 단순한 향토사 차원을 넘어선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현실 속에서, 이 작은 마을은 우리 북방사의 기억을 붙드는 상징적 공간이자 역사 주권의 현장이다. 작은 농촌마을이지만 역사학적 무게가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발해마을이 경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절묘하게 맞물린다는 점이다. 경산은 '삼성현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신라 때의 원효와 설총, 고려 때의 일연이라는 세 분의 성현은 경산의 큰 자산이다. 여기에 발해가 더해지면 경산의 역사는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신라와 고려의 정신사, 고구려를 계승한 북방사의 기억이 한 도시 안에서 만나는 셈이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스토리텔링 자산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다. 경산은 신라 문화의 흔적이 많은 도시다. 김유신이 군사를 훈련시킨 장소가 있고, 원효가 창건하고 수행했던 사찰도 있다. 무열왕이 딸(요석공주)과 외손자(설총)를 보기 위해 다녔던 산길 '왕재'도 있다. 그런 경산에,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고구려 유민 세력에 의해 건국된 발해의 기억이 후손 집성촌의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은 강력한 서사다.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시대의 역사가 한 도시 안에서 겹쳐지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 소중한 자산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상징성과 서사에 비해 콘텐츠와 인지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발해마을의 시설 확충을 통해 경산의 중요한 역사문화 명소로 키워야 한다. 발해마을의 이야기를 경산의 미래 자산으로 엮어내는 상상력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 통해 발해전시관을 만들고, 역사캠프를 운영하며, 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연계한 관광벨트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 인근에 또 다른 볼거리까지 마련된다면 금상첨화다.


도시는 랜드마크뿐 아니라 이야기로도 기억된다. 연해주의 광활한 벌판에서 느꼈던 감동이 경산의 작은 마을에서 다시 살아나듯, 발해마을은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의 자산이기도 하다. 삼성현의 정신과 발해의 기억을 잇는 서사는 경산을 역사문화도시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역사문화도시 경산의 성패는 삼성현뿐 아니라 발해마을의 좋은 소재를 얼마나 잘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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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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