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NC전 선발 등판해 3⅔이닝 무실점 역투
팔꿈치 부상으로 WBC 낙마 아픔 극복한 희망투
“완벽한 밸런스 아니지만, 팬들 함성에 가슴 뭉클”
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이 지난 12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NC의 경기 직후 3루 더그아웃에서 영남일보를 비롯한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지난 1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이하 라팍) 마운드에 선 원태인의 글러브에는 선명한 태극기 마크가 붙어 있었다. 202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경기에 쓰기 위해 원태인이 일부러 맞춘 글러브다. 원태인은 "파란색 글러브만 썼었는데 WBC 대표팀 합류 불발 때의 아쉬움을 오늘 경기에 다 털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때 맞췄던 것을 오늘 쓰게 됐다"면서 "오늘로써 아쉬움과 속상한 마음을 다 털어내고 다시 삼성의 에이스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토종 에이스' 원태인이 사자군단의 선발 투수로서 시즌 첫 경기를 소화했다. 지난 시즌 12승을 기록하며 국내 투수 중 최다승을 기록한 원태인은 스프링캠프 기간 중 팔꿈치 굴곡근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로 인해 WBC 대표팀 합류가 무산됐고, 정규 시즌 복귀마저 늦어졌다.
이날 NC 다이노스의 타선과 마주한 원태인의 성적표는 3⅔이닝 4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총 69구를 던지며 최고 시속 148㎞에 달하는 직구와 체인지업, 커터를 섞어 NC 타선을 잠재웠지만 수치상 성적보다 값진 것은 '건강한 복귀'였다.
12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NC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원태인이 태극기가 붙은 글러브를 낀 채 투구하고 있다.<삼성 라이온즈 제공>
경기 후 라팍 3루 더그아웃에서 영남일보를 비롯한 취재진과 만남을 가진 원태인은 "오늘 목표는 예정된 투구수 70개를 채우고 내려오는 것 하나뿐이었다"며 "준비 기간이 짧아 밸런스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일단 잘 마치고 내려올 수 있어 감사하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마치 스프링캠프 첫 경기를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서너 경기 더 치르며 몸 상태를 100%로 끌어올리겠다"고 덧붙였다.
위기도 있었다. 1회초 1사 만루 상황에 몰리며 실점 위기를 맞은 것. 원태인은 "솔직히 울고 싶었다. 왜 첫 경기부터 이런 시련을 주시나 싶었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병살타를 유도하며 위기를 탈출했다. 원태인은 "그 순간 혈이 뚫리는 기분이었고,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생각에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NC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원태인의 글러브에 붙어있는 태극기.<삼성 라이온즈 제공>
포수 강민호와의 호흡에서도 에이스다운 여유가 묻어났다. 2회초 스트라이크 낫 아웃 상황에서 포수 강민호의 송구가 늦어질 뻔하자 원태인이 직접 큰소리로 콜하며 위기를 넘겼다. 원태인은 "민호 형이 3루 주자와 눈싸움을 하고 계셔서 당황했다"면서도 "긴장을 풀어주려는 형의 장난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 기간은 원태인에게 성장의 시간이었다. 경산 볼파크(퓨처스 리그)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원태인은 "내가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공 하나하나에 더 집중했다"며 "오히려 나를 다잡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2월 20일 일본 오키나와 아카마 구장 잔디밭에서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이 WBC 대표팀 합류 불발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진만 감독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박 감독은 이날 투수 교체 타이밍에 직접 마운드에 올라 "당장의 1승보다 시즌 끝까지 건강하게 팀에 있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원태인을 다독였다. 원태인 역시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올해는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라며 시즌 완주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복귀전을 마친 원태인이 마운드를 내려갈 때, 라팍을 가득 메운 팬들은 박수와 환호로 에이스의 귀환을 환영했다. 원태인은 "한국시리즈나 플레이오프 때보다 더 큰 함성으로 느껴졌다. 3⅔이닝만 던지고 인사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나를 기다려준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며 뭉클한 감정을 전했다.
한편, 원태인은 이날 자신의 피칭 이후 뒤이어 등판해 데뷔 후 첫 승리를 기록한 장찬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원태인은 "제가 (승리)하나 준 거죠…"라며 기자들에게 농담을 건넸지만, "주자를 남겨두고 내려왔는데 잘 막아줘서 고맙다. 내가 신인일 때보다 더 좋은 피칭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조만간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축하해 주겠다"는 선배다운 면모를 잊지 않았다.
임훈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