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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만명 은둔청년, 혼자선 ‘희망의 문’ 열수 없다

2026-04-13 20:57

10명 중 8명 “현재 상태 벗어나고 싶다”
지자체 직업체험·복지 연계로 다시 세상 밖으로
“지속적 사회화 위해 지역 커뮤니티 구축을”

방 안에만 머물던 고립·은둔청년들이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대구에만 2만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립·은둔청년 문제 해소차원에서 각 지자체가 상담·직업체험 등 지원책을 확대하면서 회복 사례가 시나브로 나타나고 있는 것. 한때 고립·은둔을 택했던 청년들이 칠흑같은 방에서 나오지 못했던 이유와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할 과제들을 함께 들여다 봤다.


박명찬(가명) 씨가 대구 동구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 청년도전 지원사업의 조향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이 수업을 계기로 진로를 정해 대구한의대 향장산업학과에 진학했다. 대구 동구청 제공

박명찬(가명) 씨가 대구 동구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 '청년도전 지원사업'의 조향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이 수업을 계기로 진로를 정해 대구한의대 향장산업학과에 진학했다. 대구 동구청 제공

◆지자체 직업 프로그램 듣고 대학 진학 결심


박명찬(가명·31·동구 방촌동)씨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생계를 이어갈 만큼의 재능은 아니었다. 음악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대학에 진학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여러 식당에서 주방일을 이어가던 박씨는 2022년 운동을 하다가 입은 부상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는 바람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멈춰서야 했다. 2024년, 속이 메스꺼워 병원을 찾은 박씨는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아야 했다.


그는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다. 치료를 받으러 갈 때를 제외하면 집에만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1년 정도 바깥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박씨는 과거 교회에서 알게 된 지인의 권유로 동구청 '청년도전 지원사업'에 참여했고, 비로소 전환점을 맞았다. 박씨는 "매주 3~4회 반강제적으로 외출해 직업체험과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기운을 조금씩 차렸다"고 했다.


특히, 직업체험으로 접한 조향사 수업은 그의 삶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평소 향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았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흥미가 생겼다. 수업 이후 강사에게 따로 연락해 조언을 구했고, 지난달 대구한의대 향장산업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도 처음엔 놀라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해주신다"고 했다.


김은미(가명) 씨가 은둔 생활 당시 머물던 집 내부 모습. 집주인의 신고를 받은 대구 남구 대명9동행정복지센터는 주거환경 정비와 복지서비스를 연계했고, 김 씨는 이후 은둔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남구청 제공

김은미(가명) 씨가 은둔 생활 당시 머물던 집 내부 모습. 집주인의 신고를 받은 대구 남구 대명9동행정복지센터는 주거환경 정비와 복지서비스를 연계했고, 김 씨는 이후 은둔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남구청 제공

김은미(가명) 씨가 은둔 생활 당시 머물던 집을 대명9동 행정복지센터 봉사단체 이승사자단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이날 김 씨의 집에서 9t의 쓰레기를 들어냈다. 남구청 제공

김은미(가명) 씨가 은둔 생활 당시 머물던 집을 대명9동 행정복지센터 봉사단체 '이승사자단'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이날 김 씨의 집에서 9t의 쓰레기를 들어냈다. 남구청 제공

김은미(가명·여·34·남구 대명9동)씨도 지자체 도움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20년 직장 퇴사 이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김씨는 코로나19 감염까지 겹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김씨는 "우울감이 점점 깊어져 2022년부터 2년 동안은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며 "형편이 어려워 하루 한 끼 라면으로 때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먹지도, 씻지도 않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살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전환점은 2024년쯤 찾아왔다. 코를 찌르는 악취, 밀린 월세를 우려한 집주인이 남구 대명9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가장 먼저 주거환경 정비가 진행됐다. 지역 봉사단체 '이승사자단'이 찾아와 약 2시간 동안 9톤(t)에 달하는 쓰레기를 치웠다. 한 단원의 멘토링을 통해 김씨는 외출과 운동을 시작했다.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적극 나섰다. 긴급생계비 지원과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 등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연계해 도움을 줬고, 김씨가 자활사업에 참여해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일에 나서도록 지원했다.


김씨는 "처음엔 누군가 집에 오는 것조차 두려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변할 수 있었다.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나중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고립·은둔청년의 사회적 고립 시작 계기를 정리한 그래프. 대구시 사회적 고립청년 실태조사(2024)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AI로 제작.

고립·은둔청년의 사회적 고립 시작 계기를 정리한 그래프. 대구시 '사회적 고립청년 실태조사'(2024)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 AI로 제작.

◆단계적 외출 유도하고, 직업체험 지원하는 지자체들


대구시는 2024년 고립청년 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했다. 그 결과, 지역 청년(19~39세) 58만4천여명 가운데 3.6%인 2만1천여명이 고립·은둔 상태로 추정됐다. 이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조사에서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대구청년 701명 중 절반이 넘는 56.9%가 '취업 및 진학 실패'를 원인으로 들었다. '심리적·정신적 어려움'도 35.4%나 차지했다. 한편으로 응답자의 83.7%는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해 회복 의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보건대 강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고립·은둔 청년의 재기에 성공한 사례들은 보통 지자체 지원 사업과 적극적 개입으로 이뤄진다.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상담과 일상 회복, 일자리 연계까지 이어지는 회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대구지역 기초지자체들은 고립·은둔 청년을 돕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북구와 동구, 남구에선 구직 단념 청년을 발굴해 자신감 회복, 진로 탐색을 돕는 '청년도전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특히, 동구는 지역기관 및 기업과 연계, 다음달(5월)부터 고립·은둔 청년이 가상회사를 출·퇴근하며 직무 경험을 쌓는 '갓생 오피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달서구는 지난달(3월)부터 '톡톡톡, 나가볼까?' 사업을 시행 중이다. 전문 심리상담과 함께 산책이나 편의점 방문 등 단계적 외출을 유도하고, 외출 인증 땐 생필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사회 복귀를 돕는다. 서구는 6월부터 온라인 심리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집 앞, 골목, 근린시설 등 활동 반경 확장을 유도하고, 소모임 운영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 형성까지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남구와 수성구는 각각 자조형 커뮤니티 '잘나가는 커뮤니티 대구 남구', '청년고독사 예방 지원사업' 등을 통해 지역 내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운둔청년 온라인 커뮤니티 두더지땅굴 홈페이지. 고립·은둔 청년들은 이곳에서 익명으로 고민, 일상 등을 털어 놓는다. 온라인 터뮤니티 캡처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운둔청년 온라인 커뮤니티 '두더지땅굴' 홈페이지. 고립·은둔 청년들은 이곳에서 익명으로 고민, 일상 등을 털어 놓는다. 온라인 터뮤니티 캡처

◆지속적인 사회적 교류 돕는 커뮤니티 구축 필요


가장 큰 난관은 '재고립의 악순환'이다. 대구시의 사회적 고립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에서 벗어난 뒤 되돌아간 청년들의 약 30%가 '힘들고 지쳐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음'을 꼽았다. '처음 고립 상태에 이르게 된 계기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한 청년도 29.3%나 차지했다.


영남권 최초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 '작은거인의 꿈' 김홍일 센터장은 "단순히 몇 명인지 파악하는 양적 조사보다, 무엇이 이들을 숨게 만들었는지 원인을 들여다보는 질적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실제 현장에서는 당사자보다 부모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인터뷰 등을 병행해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서적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의견도 나왔다. 황동진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연구위원은 "대상자를 언제까지 지원해야 하는지가 현장의 고민거리다.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창구를 마련해 당사자들 간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재고립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고립·은둔청년 온라인 커뮤니티 '두더지 땅굴'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씨즈의 이은애 이사장은 "개인의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 복귀하면 다시 은둔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당사자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커뮤니티가 재은둔 예방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직접 커뮤니티를 운영할 경우 예산사업 특성상 보여주기식·단기성 운영에 그칠 우려가 있다. 이미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년단체나 민간 커뮤니티에 초기 지원을 해 자생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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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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