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를 품은 '세종대왕자 태실'
화사한 벚꽃 사이로 고즈넉하게 피어난 천년고찰 '선석사'의 전경
"역사는 기록되지만, 땅은 기억한다."
최근 1천6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단종의 마지막 유배지인 영월의 서늘한 강바람 속에서 막을 내린다. 영화가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경북 성주에서 이어진다.
영화 '왕사남'의 여운을 안고, 벚꽃이 만발한 지난 2일 대구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경북 성주군으로 향했다. 단종의 마지막이 아닌, 비극의 시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성주읍을 지나 월항면 인촌리에 들어서자 길은 한층 고요해진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완만한 계단 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면 태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세종대왕자 태실'로 세종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을 합쳐 모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윗부분 석재가 부서진 태실도 있고, 일부는 기단만 남아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반면 비교적 온전한 구조를 유지한 태실도 눈에 띈다. 특히 세조와 대립했던 대군(금성대군, 안평대군 등)들의 태실이 훼손된 모습은 이곳이 역사적 격변의 현장이었음을 말해준다. 단종의 운명을 떠올리면, 이곳은 한 왕의 삶이 시작된 자리이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산사의 고요를 깨우는 선석사 처마 아래 풍경
전통마을의 정취를 보여주는 성주 '한개마을'의 돌담길과 고택
선비의 절개와 전통의 기품이 서린 성주 '한개마을'의 응와세가(북비고택)
태실에서 내려오면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선석사가 자리한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이 사찰은 단종의 시대를 묵묵히 바라본 또 하나의 증인이다. 영화 속에서 단종을 끝까지 보필했던 엄흥도의 충심처럼, 선석사의 고즈넉한 풍경 소리는 어린 왕의 안녕을 빌던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사찰 마당에 서면 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사를 천천히 걷다 보면, 당시 이곳에서 울려 퍼졌을 축복의 기도가 훗날 영월의 비극과 대비되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여정으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한개마을로 향하면, 영화 '왕사남'이 구현해 낸 조선 시대의 풍경이 현실로 나타난다. 수백 년 세월을 간직한 고택과 굽이진 돌담길은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슬퍼하며 북쪽으로 문을 낸 '북비고택'의 사연은, 영화 '왕사남'에서 단종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엄흥도의 모습이 연상된다. 마을을 감싸 안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영화의 여운은 어느새 깊은 위로와 사색으로 바뀐다.
이번 탐방은 긴 여정이 아니었다. 대구에서 출발해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태봉의 흔적, 선석사의 시선, 한개마을의 일상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화려하지 않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또렷해지는 역사. 주말 하루, 가까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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