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초 ‘그린 플래그 어워드’… 9.3㎞ 녹색 혈관으로 재탄생
하루 2만8천 명 찾는 숲세권의 기적, 새로운 빛 기다리는 ‘불의 정원’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포항 철길숲이 봄 향기를 뽐내고 있다. <전준혁기자>
뺨을 스치는 바람에 제법 훈훈한 봄기운이 실려 온다. 4월의 포항 철길숲은 그야말로 '연둣빛 수채화'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마다 돋아난 새순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산책로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들은 행인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되돌려 세운다. 가벼운 옷차림의 시민들이 유모차를 밀거나 반려견과 함께 걷는 풍경은, 이곳이 과거 거친 엔진 소리가 진동하던 철길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한때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던 옛 동해남부선 폐철로는 이제 시민의 일상 속 가장 가까운 쉼터이자,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도심 속 허파로 완벽히 변모했다.
◆ 단절과 방치의 공간에서 세계가 인정한 생태 숲으로
포항시 북구 우현동 유성여고에서 남구 연일읍 유강정수장 앞까지 연장 약 9.3km에 걸쳐 조성된 이 길은 과거 도시를 양분하던 공간이었다. 2015년 동해남부선 도심 구간이 폐선되면서, 철로 주변은 한때 쓰레기 투기와 무단 경작이 일어나는 등 심각한 도시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크고 작은 녹지공간을 연계하는 도심 녹색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결과 철길숲은 2022년 영국 정부 산하 기관에서 시행하는 '그린 플래그 어워드(Green Flag Award)'를 동아시아 최초로 인증받으며 세계적으로 우수한 녹지 공간임을 알렸다. 더불어 연간 88t의 온실가스 흡수량을 인증받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에 등록되는 등 탄소중립 실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4월을 맞아 봄꽃으로 가득찬 철길숲의 모습. <전준혁기자>
◆ 골목상권 살린 '숲세권' 경제와 낭만의 야외 갤러리
철길숲의 가치는 단순히 쾌적한 보행로 조성에 그치지 않는다. 우수한 접근성 덕분에 하루 평균 약 2만8천여 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으며, 유동 인구의 증가는 자발적인 도시재생으로 이어졌다. 철길숲 주변 골목 상권에서는 연간 약 4천347억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사업비 430억원 대비 10배 이상의 막대한 소비 유발 효과다. 실제로 주변 낙후되었던 지역에 190동의 건축물이 증축 또는 신축되는 등 활기찬 숲세권 경제가 형성되고 있다. 낮의 싱그러움도 좋지만, 밤이 되면 은은한 야간 경관 조명이 숲을 감싸며 도심 속 야외 갤러리를 걷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불의정원 전경. <전준혁기자>
◆ 잠시 숨 고르는 '불의 정원', 새로운 빛을 기다리다
이 길 위에서 반드시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명소는 '불의 정원'이다. 2017년 공사 과정에서 천연가스에 불이 붙으며 우연히 시작된 이 불꽃은 7년6개월간 타오르며 포항의 상징으로 사랑받았다. 비록 2024년 9월 가스 고갈로 붉은 불꽃은 소멸 수순을 밟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자연의 궤적을 간직한 채 시민들을 맞이한다. 포항시는 현재 미량의 가스가 분출되는 현장 상황을 고려해 섣부른 철거 대신 과거의 상징성을 계승할 '미디어 아트' 도입 등 안전하고 새로운 대안을 검토 중이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며 포항의 열정을 재현할 새로운 빛의 향연을 기다리는 공간이 되었다.
◆ 봄날의 신록과 함께 걷는 특별한 주말
이번 주말에는 이 싱그러운 공간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축제도 기다리고 있다.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철길숲 일원(효자교회~형산강 에코전망대)에서 영남일보 주최 포항시민걷기대회가 열린다. 4월의 신록이 절정에 달한 숲길을 이웃과 나란히 걸으며 건강을 챙기고, 공동체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속도를 줄여보자.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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