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회사 동료와 매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식당이 있다. 그날도 조금 늦은 점심을 하려고 식당에 들어섰다.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자리에 앉아, 흰옷에 국물이라도 튈까 싶어 앞치마를 두르려던 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였다.
처음에는 식당 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노래는 창밖에서 건너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맞은편 건물 2층 재가복지센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 시간 식당 안으로 건너온 트로트 한 자락이 김치찌개가 끓기도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데워놓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신나는 노래인데도 가슴 한쪽이 찡해졌다. 시계는 고장 났다고 하는데, 세월은 왜 그렇게 잘 가는지 모르겠다. 동료와 나는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웃으며 따라 부르다가도 문득 생각했다. 저 노래를 듣고 계실 복지센터 어르신들은 지금 어떤 시간을 떠올리고 계실까. 젊었던 어느 봄날일까. 자식들 키운다고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던 하루일까. 아니면 문득 그리워지는 부모님의 얼굴일까.
그 노래 한 자락은 내 마음을 곧장 고향집 마당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햇살이 참 오래도 머물렀다. 툇마루에 앉아 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홍두깨로 칼국수 반죽을 치대던 엄마의 모습도,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 그날의 햇살 아래 그대로다.
그런데 현실의 시간은 기억처럼 멈춰 있지 않았다. 부모님의 시간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검던 머리에는 흰빛이 많아졌고, 단단하던 어깨는 조금씩 낮아졌다. 목소리도 예전보다 한결 낮고 느려졌다. 모르고 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부모님이 늘 그 자리에 계실 것처럼 여겼다. 고장난 것은 벽시계가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문득 부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드렸다.
"밥은 잡쉈어예?"
"날도 더운데 무리하지 마이소."
그 말 몇 마디를 하는데 목이 메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음이 먼저 흔들렸던 탓일까. 문득 뜨거운 햇살 아래 정수리를 그대로 내놓고 일하시던 부모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자식들 먹이고 입히느라 당신 몸 돌볼 겨를 없이 살아오신 세월이었다. 아파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세월이었다.
나도 자식을 낳고야 알았다. 부모가 강해서 버틴 것이 아니라, 자식 앞이라 약한 모습을 감춘 것임을.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 한 것이 아니라, 자식 마음 무거울까 봐 괜찮다 한 것임을. 그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참음과 사랑이 숨어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참 무심했다.
그래서 5월이 되면 카네이션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흰 카네이션을 나누었던 안나 자비스의 마음처럼, 카네이션은 부모님께 드리는 존경과 감사의 표시가 되었다. 5월 8일이면 우리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부모님의 은혜를 떠올린다. 그 은혜를 꽃 한 송이에 다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마다 그 꽃 앞에서 다시 자식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미루다 보면 끝내 늦어진다.
5월은 마음속 고장난 시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달인지도 모르겠다. 멈춘 줄 알았던 기억들이 노래 한 곡에 다시 움직이고, 미뤄두었던 마음은 꽃바구니에 담겨 부모님께로 간다.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님이 아직 내 곁에 계실 때, 더 자주 전화하고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찾아가, 이번에는 서둘러 일어서지 않고 조금 오래 그 곁에 앉아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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