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나는 건축가로서 수많은 공간을 설계해왔지만, 정작 나를 가장 깊이 빚어낸 것은 내가 머무는 공간들이었다. 사무실은 책임을 마주하는 얼굴을, 강의실은 젊은 세대와 지식을 나누는 얼굴을, 집은 사춘기 세 아들의 엄마로서 인내를 배우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역할과 태도를 드러내는 무대였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늘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때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도면 위에서는 분명했던 해답이 현장에서는 여러 제약에 가로막히고, 강의실에서는 애써 준비한 말보다 학생들의 무심한 눈빛이 더 크게 다가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괜히 예민해진 아이들의 방문이 닫혀 있고, 그 앞에서 나는 괜히 서성이다가 돌아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험 앞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버티는 법을 배운다.
건축은 벽과 지붕을 세우는 기술을 넘어 삶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마다 벽지 아래 남은 흔적과 바랜 창틀, 수없이 손이 닿았을 문손잡이를 마주한다. 그 자리에 스며 있는 시간과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낡은 것을 모두 없애기보다 그 위에 새로운 숨결을 얹는 과정은, 좌절과 기다림을 반복하며 조금씩 단단해진 나의 삶과도 닮아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 공간은 때로 우리에게 새로운 얼굴을 요구하고, 우리는 그 얼굴들을 조율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어떤 날은 잘해냈다는 안도감이, 어떤 날은 벅참과 피로가 함께 쌓인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간다.
이 모든 얼굴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쉼의 공간'에서 나온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받아주는 공간이 있어야 우리는 다시 각자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다. 하루 종일 여러 얼굴로 버텨낸 뒤, 비로소 한 얼굴로 내려앉을 곳이 필요하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 소파일 수도 있고, 창가에 잠시 기대 서 있는 몇 분의 고요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마음도, 설명해야 할 말도 내려놓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우리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안식처라는 점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공간은 어떤 얼굴을 빚어낼까?"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은 공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이 질문을 독자들에게도 건네고 싶다. 당신의 얼굴을 빚어내는 공간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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