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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경의 공간의 문장] 생활의 확장, 공공건축

2026-05-08 06:00
집이 더 이상 충분한 삶의 공간이 되지 못할 때, 때론 공공시설의 역할이 필요하다. 쓰레기로 채워진 주거 공간.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집이 더 이상 충분한 삶의 공간이 되지 못할 때, 때론 공공시설의 역할이 필요하다. 쓰레기로 채워진 주거 공간.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저장강박증'은 흔히 버리지 못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한 병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경우 그것은 '결핍의 기억'에서 비롯된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을 지나온 세대에게 물건은 쉽게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버린다는 것은 곧 다시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일은 비합리적인 집착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방식이었다. 쌓여 있는 물건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언젠가를 대비해 남겨둔 선택지들이었다.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생활 속 궁금증이나 기인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저장강박증이 있는 어르신들로 인해 동네 골목이 갈등을 겪는 일을 소개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젊은 세대의 집 안에서 발견되는 '저장'의 풍경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그곳에 쌓여 있는 것은 재사용을 전제로 한 물건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버려지지 않은 채 방치된 쓰레기들이다. 그것은 축적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어르신들의 저장이 '언젠가를 위한 준비'였다면, 젊은이들의 방치는 '아무것도 예정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이들은 그 속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쓰레기더미를 비집고 이동하고, 그 사이에 매트리스 하나만큼의 자리를 만들어 잠을 자고, 식사를 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배달음식을 먹는다. 외출할 때면 멀끔하게 차려입고,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 집 안의 상태는 철저히 가려진다. 더 기묘한 것은, 그 공간 한켠에 단 한 뼘의 정리된 벽을 만들어 그 앞에서 라이브 방송을 한다는 점이다. 카메라 속 장면은 정돈돼 있지만, 그 바깥의 공간은 완전히 무너져 있다.


대구 서구 내당도서관 내부. 공공건축은 단순한 공공 서비스시설이 아니라 생활의 확장 공간이다. <본인 촬영>

대구 서구 내당도서관 내부. 공공건축은 단순한 공공 서비스시설이 아니라 생활의 확장 공간이다. <본인 촬영>

이 장면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공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몸으로 공간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걷고, 머물고, 관계를 맺으며, 공간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의 일부 세대에게 공간은 다르게 인식된다. 책상 위 한 뼘의 영역, 모니터 속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 이미지로 소비되는 타인의 장소들에 집착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깊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잘려진 한 장의 장면이다. 3차원의 삶은 축소되고, 2차원의 배경이 삶을 대체한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매트리스 하나 놓인 자리면 충분해지고, 그 외의 공간이 쓰레기로 채워져도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같은 '쌓임'이지만, 하나는 시간을 대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포기한 결과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개인의 성향이나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주거 조건 속에 놓여 있다. 높아진 주거 비용과 불안정한 고용, 1인 가구의 증가 속에서 집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하나의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 모든 기능을 담기에는 그들의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삶은 압축되고, 압축된 삶은 다시 단순화된다. 머무는 자리 하나면 충분해지고, 그 외의 공간은 점점 의미를 잃는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은 단순한 게으름의 결과라기보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밀도가 남긴 잔여물일지도 모른다.


건축가로서, 게다가 대부분의 커리어를 공공건축을 설계하는 일을 해온 전문가라는 입장에서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사회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집이 더 이상 충분한 삶의 공간이 되지 못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을 어디에서 보완할 것인가. 과거에는 골목과 마당, 동네가 그 역할을 했다. 집 밖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활의 공간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날의 도시는 이러한 공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대부분 소비를 전제로 하고, 오래 있을수록 비용이 발생한다. 갈 곳 없는 시간은 결국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공간, 즉 자신의 방 안으로 다시 밀려들어간다.


대구 수성구 여성클럽 내부. 수성대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조성했다. <본인 촬영>

대구 수성구 여성클럽 내부. 수성대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조성했다. <본인 촬영>

그렇다면 이 문제를 개인의 의지나 정리 습관의 문제로 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로 물어야 한다. 도시는 지금,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삶의 밀도를 함께 나눌 준비가 돼 있는가.


이제 공공시설은 단순한 행정이나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위한 편의 제공을 넘어 '생활의 확장 공간'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을 보내도 되는 공간. 돈을 소비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지는 공간. 그러한 장소들이 도시 곳곳에 충분히 존재할 때, 비로소 개인의 삶은 집이라는 작은 틀을 넘어설 수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수성대와 협력을 통해 수성대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만든 영상미디어센터와 청년센터, 여성클럽을 설계한 적이 있다. 이러한 세대 지원 공공건축물이 개인 생활 공간의 확장을 지원하는 적절한 배려가 아닐까.


청년 서비스 공간인 대구 수성구 청년센터. 세대 지원 공공건축물은 개인 생활공간의 확장을 지원하는 배려가 될 수 있다. <본인 촬영>

청년 서비스 공간인 대구 수성구 청년센터. 세대 지원 공공건축물은 개인 생활공간의 확장을 지원하는 배려가 될 수 있다. <본인 촬영>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와 편집 공간을 열어두고, 기자재를 대여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교육도 진행하는 영상미디어센터도 좋은 공간이지만. 청년센터에는 다목적 열린 공간뿐만 아니라 취업 면접을 연습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회의 공간, 휴게 공간, 모임 공간 등이 있어 점점 작아지는 청년들과 도시 소시민들을 위한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집이 점점 작아지는 시대일수록 도시는 공공건축물의 서비스 공간으로 그만큼 더 넓어져야 한다. 개인의 공간이 줄어든 자리를 공공의 공간이 대신 채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각자의 방 안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삶을 견디게 될 것이다.


건축은 본래 인간의 3차원적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청년들이 집 안의 쓰레기를 외면한 채 카메라 앞의 2차원적 배경에만 집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발 딛고 선 현실의 공간이 그만큼 무너져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공공건축은 단순히 '시설'을 짓는 것을 넘어, 이들이 잃어버린 '입체적인 일상'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비어 있는 마당이 돼야 한다. 모니터 밖으로 나온 청년들이 타인과 눈을 맞추고, 숨을 쉬며, 자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진짜 공간'이 도시 곳곳에 실핏줄처럼 퍼져나가야 한다.


집은 작아지더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작아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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