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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배움은 누구의 것인가”…성주 대방동에서 길을 묻다 차별 없는 교육의 요람, 도산서당·고산숙 200년의 기억

2026-05-09 10:14

신분 벽 허물고 학문 확장한 조선 지식인의 실천
현대 교육의 불평등 문제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경북 성주군 선남면 대방동 마을 입구에 세원진 안내간판, 대방동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석현철 기자>

경북 성주군 선남면 대방동 마을 입구에 세원진 안내간판, 대방동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석현철 기자>

경북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대방동.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붙드는 것은 하늘을 향해 유영하듯 세워진 '하늘물고기' 안내 간판이다.


"급제해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대방(大榜)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이다.


그러나 마을 안쪽, 도산서당과 고산숙의 마루에 앉아 보면 이들이 기다렸던 '좋은 소식'은 단순한 출세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도산서당 입구 전경, 평소에는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어 문틈으로만 내부 전경을 살펴볼 수 있다. 문 입구에  문화재 공덕비와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석현철 기자>

도산서당 입구 전경, 평소에는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어 문틈으로만 내부 전경을 살펴볼 수 있다. 문 입구에 문화재 공덕비와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석현철 기자>

이곳은 조선 후기, 신분의 벽을 넘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선언을 현실로 구현한 공간이다.


말이 아닌 건축으로 남은, 교육 혁명의 현장이다.


영남 지역에는 수많은 서원과 정자가 남아 있다.


하지만 대방동 도산서당의 가치는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선택'에 있다.


도산서당 전경 <성주군청 박재관 학예사 제공>

도산서당 전경 <성주군청 박재관 학예사 제공>

1799년, 초가 세 칸 '죽림재'로 시작된 이곳은 1806년 '대방재'로 이름을 바꾸며 문을 완전히 열어젖힌다.


신분을 묻지 않았다. 배우고자 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


양반 중심 질서를 스스로 허물고 평민에게까지 학문을 확장한 결정.


이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향촌 사회 전체를 바꾸려는 지식인의 실천적 선언이었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건물의 배치'에 있다.


도산서당 전경,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마당에는 풀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석현철 기자>

도산서당 전경,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마당에는 풀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석현철 기자>

1860년, 서당은 현재 위치로 옮겨지며 '도산서당'이 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정한 팔작지붕. 하지만 핵심은 구조다.


중앙 대청마루는 사방으로 열려 있다. 닫힌 교실이 아니라, 자연과 이어진 '사유의 공간'.


지식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 읽힌다.


고산숙 전경 <성주군청 박재관 학예사 제공>

고산숙 전경 <성주군청 박재관 학예사 제공>

반면, 옛 터에는 1872년 '고산숙'이 세워진다.


정면 7칸으로 길게 펼쳐진 이 건물은 또 다른 성격을 갖는다.


좌측 '호연당', 우측 '연심당'. 기개와 사유. 도산서당이 '배움의 확장'이라면 고산숙은 '학문의 깊이'다.


두 공간은 기능이 다르다. 하지만 방향은 같다. 배움은 넓어져야 하고, 동시에 깊어져야 한다.


이 공간의 진짜 힘은 '지속성'이다. 조선 말기 신분을 허문 교육에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 이후인 1956년부터 1966년까지, 이곳은 '상록학원'으로 운영된다.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문맹 퇴치 교육. 시대는 바뀌었지만 질문은 같았다.


"누가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이곳은 늘 같은 답을 선택했다. "누구나."


도산서당 마루에 오르면 검게 윤이 난 기둥과 닳아버린 댓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낡음이 아니다. 시간이 쌓인 자리다.


수많은 발걸음이 이곳을 지나갔고 그 발걸음들은 모두 배움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는 마루에 잠시 앉아 있으면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평온함, 그리고 약간의 부끄러움.


오늘날 우리는 교육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


지역, 계층, 정보 격차.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주 대방동의 이 작은 서당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조용히 묻는다.


"배움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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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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