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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만학(晚學)에 대한 책임

2026-05-11 06:00
사회1팀 구경모기자

사회1팀 구경모기자

취재과정에서 만난 1947년생 만학도 한정자(79)씨 삶을 들여다 봤다. 청주 태생인 한씨는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고작 네 살이었다. 가족과 피난길에 올라 경북 영일군(포항)에 정착했다. 피난 도중 아버지는 행방불명돼 외삼촌 댁에 맡겨졌다.


청소년기 때 한씨의 일과는 농사일과 집안일 뿐이었다. 그렇게 청춘을 속절없이 보낸 한씨는 열아홉에 결혼했다. 남편은 배를 탔고, 한씨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틈 날 때마다 파출부 일을 했다. 한씨 삶에서 빠진 게 하나 있다. 바로 학교 생활이다. 야간고교를 졸업한 남편과 달리 한씨는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한씨에게 글을 모른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인생의 얼룩으로 남았다. 병원 안내문을 읽지 못했다. 은행 서류를 작성할 때면 남편이나 자식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며느리에게 글을 몰라 전화하는 게 제일 싫었다고 했다.


한씨가 야학의 문을 두드린 건 예순을 넘겨서다. 글을 모르니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입학해야 하는지조차 막막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늘 옆에서 글을 읽어주던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은 결혼해 타지로 떠났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해야 하는 글자 앞에서 언제까지 타인의 도움을 구걸할 수만 없었다.


지금도 야학에 가면 수많은 '한씨'들을 접할 수 있다. 사연은 제각각이다. 전쟁·가난·딸이라서 혹은 생계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배움의 공백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5년 고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73.6%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이들이 소수자로 여겨지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인 비문해자 146만 명이 있다.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은 '학력과잉 시대 '한복판에서 또다시 소외돼 있다. 지금처럼 졸업장이 흔해진 시대에도 누군가에게 글자는 여전히 '생활의 벽'이다.


그 벽을 여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야학이 메워왔다. 대부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버텼다. 교사들은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고, 밤에는 무보수로 교실에 선다. 부족한 운영비를 스스로 보태가며 학교를 유지하는 곳도 더러 있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 자체로 끝낼 일은 아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것이 개인의 귀책이 아닌 시대적 결핍의 결과라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일 역시 민간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곤란하다. 교육부는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시대적, 가정적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교문 밖에 서야 했던 이들이 다시 배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교육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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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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