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공직 노하우로 23억 규모 국비 사업 유치
고향 어르신 모시는 ‘맥가이버 이장’
포항시 죽장면 감곡리 경로당에서 만난 이재용 이장. <전준혁기자>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감곡리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이장이 있다. 바로 포항시 용흥동장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와 3년째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재용(65)씨다. 동장으로 수만 명의 동 주민을 보살피던 그가, 이제는 6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산골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는 '맥가이버'이자 '행정 해결사'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 이장이 감곡리로 완전히 돌아온 것은 2021년 공직 퇴직 이후다. 몸이 불편한 형님을 대신해 맏이 역할을 하며 선산과 텃밭을 관리하기 위해 고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그는 꼭 필요한 일꾼이 됐다. 이 이장은 "전임 이장님이 16년을 하셨는데 후임자가 마땅치 않았다"며 "처음에는 저도 고사했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행정 경험이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셔서 고향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다"고 이장직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행정의 달인답게 그의 성과는 굵직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에 마무리된 23억 원 규모의 '과수 기반 사업'이다. 이 이장은 "과수 농가에 물을 공급하는 배관과 물탱크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인근 마을과 합쳐 대규모 국비를 끌어왔다"며 "행정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잘 알기 때문에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로당 전면 리모델링과 산사태 위험 지역 사방공사, 마을 진입로 확장 등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마을에서 그의 업무 영역은 무한대다. 휴대폰 조작을 돕는 것부터 집 안의 누수 수리까지, 외지에 있는 자식들을 대신해 동네의 자잘한 불편을 모두 해결한다. 이 이장은 "이장의 역할은 맥가이버와 같다"며 "어르신들이 자식을 부르기 힘든 상황에서 제가 대신 나서서 손봐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러한 헌신 덕분에 감곡리는 외지인과의 갈등이 없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이 이장은 "사업을 선정할 때 항상 개발위원회와 전체 회의를 거쳐 투명하게 순위를 정한다"며 "투명한 소통이 뒷받침되니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생길 틈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해마다 광복절이면 외지 거주 주민까지 모두 초청해 큰 잔치를 열며 화합을 다지고 있다.
이 이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그는 "옛날의 직함은 모두 잊고 오직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로 남고 싶다"며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그날까지 감곡리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고향 마을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행정 현장에서 쌓은 노련함과 고향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감곡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이재용 이장.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척박했던 농촌 마을에는 희망과 활력이 샘솟고 있다. 가슴에 단 이장 배지보다 주민들의 환한 웃음이 더 소중하다는 그의 다짐이 짙푸른 죽장의 산자락에 울려 퍼지고 있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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