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순 전 경북대학교 초빙교수|
장자는 '호접몽' 일화에서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을 제자와 이야기하며,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이 진정한 자신일까? 는 인류의 오랜 철학적 화두이기도 하다. 한때 산업화 시기에는 누가 원조인지를 두고 종종 논란이 생기곤 했다. 원조를 증명받기 위한 소송이 줄을 잇기도 했다. 최초, 처음에 주어지는 원본의 아우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복제는 결코 원본의 아우라를 가질 수 없었다.
나는 긴 시간 동안 방송 현장에서 수많은 소리와 음악을 만지며 살아왔다. 방송쟁이 특유의 예민한 청각은 원조와 모사를 구분해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런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모창 프로그램의 흥행은 단순한 예능 이상의 사회적 현상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여덟 번째 시즌을 맞이한 이 방송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은 커튼 뒤에 숨은 원조 가수와 모창자 중 진짜를 찾아내려 애를 쓴다. 흥미로운 점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원조 가수가 탈락하고 모창자가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뿐만 아니라 가수의 동료나 지인들조차도 원조 가수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누가 모창을 잘하는가에서 원조 가수 살아남기가 더 관심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자신조차도 모창자가 더 자신 같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과거의 모창은 고통스러운 육체적 노동이 수반되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받아 적고, 테이프가 늘어지고 레코드판에 깊은 스크래치가 생길 때까지 무한 반복하며 가수의 목소리를 복제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과 틈새는 원본과 사본의 경계를 명확히 해주었다. 사본은 결코 원본만큼 선명할 수 없었고, 그 간극이 곧 원조의 권위를 지탱해주었다.
복제가 원본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디지털 없이는 이러한 정교한 모방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디지털화가 원본의 복제를 가속화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원본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화가의 원작, 친필 원고 등, 원조, '진짜'는 대체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다고 믿었다. 과거에는 복사본에 흔적이 남았다. 복사한 종이는 흐릿했고, 원본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 복제한 녹음테이프는 잡음이 생겼다. 그래서 원본과 사본은 비교적 쉽게 구별됐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이후 복사는 더 이상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컴퓨터 파일은 복사해도 원본과 완전히 동일하다. 아니 복제한 이후에는 어느 파일이 최초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때에 따라서는 구분이 불가능하거나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원본 없는 복제물이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실재보다 더 실제 같은 복제물이 현실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디지털 시대가 복제의 가속화를 이끌었다면, AI시대는 그 복제를 더 완벽하게 더 일상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원조의 위협이 아닌 원본의 대체가 일상이 된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온 '원본의 권위'는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수십 년간 고독하게 이어온 노력과 통찰이, AI의 거대언어모델과 딥러닝 기술에 의해 단 몇 초 만에 데이터로 치환되어 대중에게 배포되며, '전문성'과 '고유성'이라는 가치를 희석시킨다. 기술이 모든 것을 복제하고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사라진 시뮬라크르의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그 장자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AI시대의 큰 변화는 기술 자체보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원조의 권위'를 다시 묻게 만든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이제 원조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원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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