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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窓] 의료진 처벌 강화가 부른 응급진료 축소의 악순환

2026-05-22 06:00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과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가장 힘들었던 환자군 중 하나는 만취 상태로 119나 경찰 순찰차를 통해 내원하는 환자들이었다. 대부분 보호자와 연락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환자는 의식이 흐리거나 횡설수설해 정확한 병력 청취와 진찰 자체가 어려웠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단순 주취 상태인지, 아니면 뇌출혈이나 외상 같은 응급질환이 숨어 있는지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했다. 그래서 피검사를 하고 수액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보거나, 반복적인 구토나 의식 저하가 있으면 혹시 모를 뇌출혈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뇌 CT 촬영을 시행하곤 했다.


문제는 오히려 다음 날 술이 깬 뒤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가 "왜 허락도 없이 검사를 했느냐"며 진료비를 내지 않거나 행패를 부리는 일이 흔했다. 응급실에서 근무한 의사라면 대부분 한 번쯤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응급실 의료진은 혹시 모를 치명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검사를 시행하지만, 동시에 과잉진료라는 비난 역시 감수해야 하는 현실 속에 놓여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이러한 응급실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젊은 환자가 만취 상태에서 구토 증상을 보이며 응급실을 방문했고, 의료진은 우선 뇌출혈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뇌 CT를 촬영했다. CT상 이상 소견이 없자 환자는 귀가했고,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되자 추가로 MRI 검사를 시행해 결국 척추동맥 박리에 의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척추동맥 박리는 흔한 질환이 아니며, 특히 젊은 환자의 만취 상태에서는 초기부터 이를 의심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의료진의 부주의와 인수인계 미흡이 중대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응급실의 특수성과 당시 진료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결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판결이 단순히 한 사건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응급실은 제한된 인력과 시간 속에서 수많은 환자를 동시에 진료하는 공간이다. 특히 술에 취한 환자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고, 증상 또한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의료진은 적극적인 진료보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어진료에 몰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학과와 같은 필수의료를 더욱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당시 정확한 원인 규명이 끝나기도 전에 소아과 교수와 의료진이 구속 수사를 받았다. 이후 법원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후유증은 컸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은 급감했고, 지금은 지방은 물론 대도시에서도 야간이나 주말에 소아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크게 줄었다. 대구 역시 현재 야간 소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사실상 칠곡 경북대 병원정도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진료 볼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의료 현장은 급격히 무너졌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료진 개인에 대한 처벌 강화만이 아니다. 응급실 과밀화, 부족한 인력, 열악한 근무 환경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응급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의료진이 형사처벌의 두려움 속에서 소극적 진료를 하게 된다면, 결국 응급진료 축소와 의료 공백이라는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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