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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르포: 독도가 운다-위기의 생태] “대한민국 영토” 외치던 그 섬 아래 찢긴 태극기 떠밀려 있었다

2026-05-21 21:06

독도 절벽 아래 폐로프·플라스틱 사이 방치된 태극기
강풍·높은 파도에 수거 어려워…“치워도 또 밀려옵니더”
눈에 안 띄는 작은 쓰레기들, 독도 해안 천천히 잠식

관광객이 들고 왔다가 부주의로 놓친 태극기가 독도 절벽 아래 방치돼 있다. <홍준기 기자>

관광객이 들고 왔다가 부주의로 놓친 태극기가 독도 절벽 아래 방치돼 있다. <홍준기 기자>

독도 주변 해역은 차가운 해수와 따뜻한 해수가 만나는 독특한 해양환경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어류가 서식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해양쓰레기, 그리고 지리적 접근성의 한계 등으로 인해 독도의 자연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과 관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11시26분. 독도 동도 접안장 바닥에는 바닷물이 자작하게 깔려 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밀려와 접안장 끝을 때릴 때면 어김없이 철제 구조물에서 '철퍽'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바닷물은 관광객 신발 밑으로 다시 흘러내린다. 접안장 난간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짠내 섞인 비린내와 함께 오랜 시간 젖어 있던 철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뒤쪽 승객 이동해 주십시오." 확성기 방송은 강한 바람 탓에 절반쯤 끊겨 들려왔다. 곧이어 무전기 잡음이 섞였다. 관광객은 난간을 붙잡은 채 휴대전화로 독도 절벽을 촬영하고 있었다. 몇몇은 작은 태극기를 꺼내 들었다. 바람이 세게 불자 태극기 끝이 거칠게 흔들렸다.


관광객들이 들고 온 태극기가 독도 해안가에 해양쓰레기와 함께 뒤섞여 있다. <홍준기 기자>

관광객들이 들고 온 태극기가 독도 해안가에 해양쓰레기와 함께 뒤섞여 있다. <홍준기 기자>

난간 아래 검은 절벽 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바위틈 사이에 무언가 걸려 있다. 태극기였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이미 바랬고 흰 바탕은 누렇게 변했다. 끝부분은 실처럼 풀려 있었다. 태극기 한쪽이 검은 암반 틈에 끼어 있는 가운데, 다른 끝은 파도가 칠 때마다 젖은 바위를 때렸다. 주변에는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 조각, 플라스틱 부표 파편, 끊어진 폐로프가 같이 걸려 있었다.


접안장 주변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태극기가 어떻게 독도 절벽 아래 바위틈에 걸려 있는지 짐작이 갔다. 누군가 흔들다 놓쳤거나, 바람에 날렸을 가능성이 크다. 독도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 한 번 바위 아래로 떨어진 쓰레기를 수거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실제 접안장 아래쪽 경사는 생각보다 훨씬 가팔랐다. 사람 발 하나 디디기 어려운 구조다. 검은 화산암 사이로 물보라가 계속 튀어 올랐다. 독도관리사무소 안전지도팀 이문준(52) 안전지도원은 바위 아래 태극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짧게 말했다. "와서 흔들고 사진 찍고 간다. 근데 저렇게 남는 것"이라고 했다.


근처에 있던 독도경비대원들도 "바람 심한 날은 금방 날아간다. 아래로 떨어지면 위험해서 바로 못 치운다"고 했다. 독도 접안장은 파도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날씨가 나빠지면 입도가 통제되는 날도 많다. 독도 해안에 남은 작은 쓰레기들이 오래 방치되는 이유다.


독도 절벽 아래 폐로프·플라스틱 등 해양쓰레기가 쌓여 있다. <홍준기 기자>

독도 절벽 아래 폐로프·플라스틱 등 해양쓰레기가 쌓여 있다. <홍준기 기자>

독도 해안에는 육지 해변처럼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지는 않다. 대신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과 스티로폼 알갱이, 폐어망 같은 것들이 바위틈마다 조금씩 남아 있다. 문제는 이런 흔적들이 점점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남는다는 점이다. 파도와 햇빛을 반복해서 맞은 플라스틱은 더 작은 조각으로 부서진다. 현장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독도 주변에서 잘게 깨진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조각이 자주 눈에 띈다고 했다.


바위틈에 걸린 태극기는 파도가 칠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대한민국 최동단 섬을 '상징'처럼 들고 올라온 태극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폐로프와 플라스틱 조각 사이에 걸린 채 젖어 있다. 일부 부표에는 흐릿한 외국어 글씨 흔적도 남아 있다. 오래 닳아 정확한 판독은 어렵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해류를 따라 떠밀려왔을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바람 불면 또 들어옵니더." 관계자는 젖은 로프를 발끝으로 한 번 툭 건드렸다.


독도 해안에 괭이갈매기들이 모여 있다. 잘게 쪼개진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조각이 생태계를 해치지나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준기 기자>

독도 해안에 괭이갈매기들이 모여 있다. 잘게 쪼개진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조각이 생태계를 해치지나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준기 기자>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같은 해양 조류가 머무는 섬이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조각들이 결국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나온다. 독도 해안의 변화는 한 번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바위틈과 암반 아래에서 천천히 쌓여간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전 11시34분. 배 출항 3분 전이라는 방송이 다시 나왔다. 관광객들은 서둘러 줄을 섰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접어 가방 안에 넣었고, 누군가는 바닥에 떨어진 비닐 조각을 신발로 밀어냈다. 접안장 아래에서는 선박 엔진 공회전 소리가 계속 울렸다. 멀리서 본 독도는 여전히 조용했다. 안개 사이로 검은 절벽만 길게 보였다. 하지만 독도 절벽 아래에는 파도만이 아니라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함께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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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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