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현호 (주)콰타드림랩 대표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플러그 앤 플레이 테크 센터의 포럼에 참가했다. 인근 한 카페에 들렀을 때였다. 커피를 마시던 젊은 창업가들과 개발자들이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AI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전 창업 실패 경험을 이야기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곳의 청년들은 오히려 실패를 배움의 과정처럼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뜻대로 안 되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문득 저명한 투자자인 랜디 코미사의 저서 '승려와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진짜 힘은 단순한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빨리 성공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더 중요하게 묻는 문화. 팔로알토, 로스 가토스 주변 카페와 거리에서는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링크드인과 에어비앤비 같은 글로벌 기업 본사 주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고, 서로의 명함보다 서로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스탠퍼드 대학 스타디움에서 BTS 공연이 있던 날, 필자는 스탠퍼드 대학의 커뮤니티 공간 NG하우스 라운지에서 재학생, 투자자들과 창업 네트워킹을 하고 있었다. K-POP으로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함께 열광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IT 기업만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기술과 문화, 창업과 예술, 대학과 기업, 투자와 네트워크가 하나의 생태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청년들은 그 안에서 단순히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가 청년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단순히 연봉이 높아서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실패 경험조차 자산으로 바라보는 문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는 투자 생태계, 자유롭게 협업하고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느끼는 곳으로 이동한다.
지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이유도 비슷하다.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청년들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문화·예술·창업·기술·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 결국 청년 문제는 단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대구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자랑스러운 도시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AI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 속에서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머물고 싶은 도시, 다시 오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업 펀드와 함께 청년 창업 생태계와 문화 콘텐츠, 글로벌 네트워크, 대학과 기업의 연결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역에서도 세계적인 기업과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태도다. 청년을 비용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만드는 투자로 바라볼 것인가. 청년은 도시의 소비자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 그 자체다. 실리콘밸리가 세계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결국 이곳에서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대구도 청년들이 다시 돌아와 도전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기술과 문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도시. 그런 도시가 바로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청년이 모여드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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