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 두사람이 사라져 버린 문수전. 바로 뒤편 암벽굴 여기서 바위의 문수동자를 볼 수 있다.
전날 살짝 비가 내렸다. 산야는 비의 뒤끝이 상쾌하다. 고성 무이산은 우뚝 솟아 엉너리친다. 무이산은 겉멋 부리지 않는 산이다. 산 칠부자리에서 조망하는 남해 통영에서 삼천포까지 한려수도 비경은 나빌레라 승무(僧舞)를 추게 한다. 단애의 암벽이 아찔하고 표고가 다른 다섯 대가 있어 암자가 들어서기에 하늘이 내린 길지이다. 그 가장 낮은 곳 콧등처럼 돌출한 벼랑이 운치롭다.
어리목 같은 틈새 작은 다리를 건넌다. 남해를 향해 불쑥 머리를 내민 바위투성이 땅에 들어간다. 난간에 다가가 사방을 본다. 내륙은 물론이고 남해의 풍경이 허스키 비음으로 올라간다. 한려수도인 자란만의 비경. 한낮 햇빛이 온통 은백색 거울처럼 되비치는 바다. 삼천포 와룡산의 왼쪽 귀에 해당한다는 좌이산이 가까이에 우뚝하고 향로봉 뒤로 아스스하게 남해도가 있다. 정면으로는 다도해섬이 야생화처럼 떠 있어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다웠다. 좀 더 먼 곳 지리망산과 옥녀의 전설이 있는 해무의 섬 사량도가 봄빛으로 트림하고, 더 멀리 욕지도가 아슴아슴하다.
의상대사가 조성한 문수암을 새로 증축한 문수암의 전 풍경.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시선을 마구잡이 던진다. 거제도 노자산 그 능선이 데생의 연필 자국을 그린다. 장차 미륵이 출현하리라는 통영의 미륵섬이 상상에 날개를 단다. 그리고 무인도가 이름 모를 섬들이 너무 아름다워 우와 세상에 탄성을 자아낸다. 손쉽게 찾아와 남해 절경을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는 무이산. 모처럼 눈호강을 제대로 한다. 전각과 요사채가 있는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몇 번이나 망설인다. 걸음을 뗐다 멈추고 뗐다 멈추고. 그 황홀한 풍경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남해 풍경이 눈에 넘쳐 마음에까지 들쑥날쑥 흐르는 기쁨의 시간. 오랜 신앙의 공간 못지않게 마음이 해방감으로 툭 터진다.
옆에 근대의 고승 청담 대종사 사리탑과 탑비가 있다. 본명 이찬호(李讚浩)인 청담 스님은 1902년 진주에서 출생, 1971년 세수 70세로 북한산 도선사에서 입적하셨다. 청담은 진주농림보통학교(진주농고)에 다니던 시절 불가와 인연을 맺었고 농고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귀국하여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하였다. 한때 문경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였고, 이곳 문수암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조금 오르니 천불전(千佛殿)이 있다. 천불(千佛)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겁에 각각 나타난다는 천의 부처다. 중생들이 살아가다 속에 천불이 나면 찾아와 절하고 빌면 그 심화(心火)가 사그라져 재가 되는 전각인가. 허튼 생각에 싱겁게 헤실거린다.
고성 해동제일 약사도량인 일주문 약사전과 동양최대 금동 약사대불(13m). 2004년 정천 대종사가 조성했다.
종무소를 지나 문수전으로 간다. 문수암 창건 설화는 어떤가. 무이산은 삼국시대부터 해동 명승지로 화랑의 수련장으로 알려졌다. 신라 성덕왕 5년(706년) 의상이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으로 가던 중 무선리 민가에 묵게 되었다. 한밤 꿈속에 노승이 나타나 내일 아침 걸인을 만나면 따라가보라 했다. 날이 새자 과연 걸인이 나타나 그를 따라 무이산으로 갔다. 산에 오르며 보니 다도해 절경에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산속에는 다른 걸인이 있어 두 걸인이 반기면서 두 손을 마주잡고 석벽에 있는 동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의상이 눈을 부릅뜨고 동굴 벽을 살펴보니 걸인이 사라진 돌벽에 문수보살상이 나타나 있었다.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은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은 의상은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다. 지금도 관광객과 신도들이 돌벽에 뚜렷한 문수상을 보러 많이 찾는다. 문수상을 볼 수 있도록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발자국을 선명하게 그려놔 더욱 현장감이 있다.
고성 문수전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비경. 무인도와 사량도 우측 산봉에 있는 약사전 약사대불이 장관이다.
한편 문수암을 말하면 휴암당 정천 대종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분은 1930년 부산 동래에서 출생하셨다. 1946년 17세 때 해인사에서 출가 여러 사찰에서 정진하시다가 1962년 33세에 문수암 주지로 부임 1967년 문수암을 중창하셨다. 1973년 청담 대종사 사리부도탑 건립, 1983년 무이산 곁에 있는 수태산에 보현암 창건, 2004년 약사전과 약사여래불을 조성하셨다.
정천 대종사는 도심 노스님이 "중 노릇 잘해라. 금방 눈 밑이 하얘진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머리 만져보고 중 노릇 잘하는지 살펴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 계율로 삼았다 한다. 스님이 스님 노릇 잘하고 목사가 목사 노릇 잘하고 신부가 신부 노릇 잘하면 이 땅에 극락 천국이 건설될 것이지만. 그분은 평소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여 들뜨면 동시에 없음의 괴로움이 솟아나고, 부처를 생각하니 그와 대비되는 중생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생각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저서로는 '피안의 향훈'이 있다. 2006년 10월 15일 세수 77세 법랍 60세를 일기로 원적에 들었으며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력력고명물형자(歷歷孤明勿形者 : 뚜렷이 홀로 밝아 모양이 없는 자여). 본무생사최당당(本無生死最堂堂: 본래 생사가 없이 가장 당당하도다), 환화삼계임거래(幻化三界任去來: 환화의 삼계에 임의로 오가니), 천상천하수능당(天上天下誰能當: 천상천하에 누가 능히 당하리오).
고승 청담 스님이 자리잡고 정천 대종사가 1983년 창건한 보현암의 풍경. 편안하고 불교 수도 최적지로 보인다.
문수암에서 1.6㎞ 떨어진 수태산 보현암으로 간다. 내려가다 다시 치솟은 수려한 산봉에 2004년 정천 대종사가 조성한 약사전과 약사여래대불(동양 최대 13m 약사불)에 들린다. 그 황홀한 풍경 남해 다도해가 바싹 다가와 아름다움을 폭죽처럼 터뜨린다. 보고 돌아보고, 마음에 저 바다가 자비(慈悲) 되어 가득 찬다. 우리 모두 환자다. 생로병사의 병자다. 약이 절실히 필요하다.
약사불이 손에 쥐고 있는 약병은 깨달음의 약이다. 각지즉무(覺之卽無) 깨달으면 병이 즉각 없어진다. 그러므로 약(藥)과 병(病)이 둘이 아니다. 진리와 세속이 둘이 아니다. 생로(生老)와 병사(病死)가 둘이 아니다. 오직 마음 하나의 작용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물질적인 현상세계와 평등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같다는 것이다.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을 차별하여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동방 정유리 세계에 살면서 12대원을 발하여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늘려 주시며 약사유리광여래 대의왕불로 신앙되었던 부처님에게 경배하고 400m 거리에 있는 보현암으로 간다.
이 암자는 정천 스님 은사이셨던 청담 스님께서 '절집이 들어설 길지'라고 말씀하시어 1983년 정천 스님이 창건하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역시 절경으로 마음에 환희심이 일어난다. 이렇게 기쁨이 샘솟는 마음은 대체 무엇인가. 불교계의 큰 별 '절구통 수좌' 법전 스님은 '설사 바다가 마른다 해도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 바닥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하였다. 마음 알기가 그만큼 헛갈리고 어렵다는 것이다. 지혜와 깨달음의 문수보살. 그리고 수행을 제일로 삼는 보현보살. 보살은 보리 살타의 준말이다. 각유정(覺有情) 깨달은 중생이다. 저 피안으로 내가 건너기 전에 남을 먼저 건너게 한다.
고성 갈모봉은 조선시대 의적 갈봉의 묘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이곳에는 편백나무가 청정한 트레킹 로드가 있다.
나도 보살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귀에는 때때로 사찰 풍경 소리가 들린다. 주승도 나도 잠든 깊은 밤에는 풍경 소리 혼자 울고 있을까. 이제 되돌아 나와 인근에 있는 갈모봉 자연휴양림으로 가야 한다. 거기 편백나무 숲길 걸으며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나의 정감은 저 바다처럼 철썩거리지만 깨달음에 이르게 될는지는 무언가 아득하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굴러가지 않는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 사진작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