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기초의원 점자 공보물 의무 대상서 빠져
대구 시의원 35%·구군의원 21%만 제작해
“시장 선거보다 주목도 낮아 당사자 소외 심화”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구현 외침속 ‘슬픈 자화상’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공보물이 각 가정으로 배달이 됐지만,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여전히 후보자 관련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자용 선거 홍보물 배포는 의무사항이 아닌 탓에 양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후보들의 경우 점자형·USB형 공보물을 제공하지만, 이마저 점자 해독 여부나 기기 활용 능력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엇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외치는 지방선거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대구지역 후보자들의 점자형 선거공보물. 대구시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대구 구·군의원 후보자 21%만 점자 공보물 배포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선거와 지역구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단체장선거 후보자에게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광역·기초의원 후보는 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 때문에 대구지역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생활과 밀접한 지방의원 후보의 공약과 이력 등을 확인하는 데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27일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 결과 이번 지방선거 대구시의원 선거 출마 후보(무투표 당선인 제외) 70명 가운데 점자형 공보물을 제작·배포한 후보는 25명이 전부다. 전체의 35%에 그쳤다. 기초의원(구·군의원)의 경우, 전체 176명 중 단 21%(37명)만 점자형 공보물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치러진 제8회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더 처참하다. 당시 대구시의원 후보 19명(무투표 당선인 제외) 중 6명(31%)이 점자 공보물을 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참여율이 4%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구·군의원 후보자들의 경우 , 지난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180명 중 67명(37%)이 참여했던 것에 비해 무려 16%포인트 급감했다.
이처럼 기초의원 후보들의 점자 공보물 제작률이 저조한 것을 두고, 대구지역 장애인 단체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불평등한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각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동균 사무국장은 "시장 후보는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책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다. 하지만 시의원이나 구·군의원 후보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아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선거공보물은 시각장애인 유권자가 후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하고, 거의 유일한 통로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시의원, 구·군의원 선거야말로 점자형 공보물이 필요한데, 이를 의무화하지 않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점자공보물·USB 한계…'선거 ARS' 도입을
책자형 선거공보 내용을 음성·점자 파일 등으로 변환해 담은 USB 저장매체. 선관위는 제8회 지방선거부터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 해당 USB를 제공하고 있다. 황인철씨 제공
현재 제공되는 점자형 공보물과 USB형 공보물도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점자형 공보물은 같은 내용을 담더라도 일반 글자보다 훨씬 많은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가령 '뉴스'라는 단어는 한글로 쓰면 두 글자지만, 점자로 옮기면 'ㄴ·ㅠ·ㅅ·ㅡ'처럼 자음과 모음을 각각 표기해야 해서다.
하지만 현행법상 점자형 공보물 면수는 일반 책자형 공보물의 2배 이내로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후보자 공약이 축약되거나 일부 정보가 빠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 제한을 두지 않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지난 제8회 지방선거부터 도입한 USB형 공보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책자형 공보 내용을 음성 파일 등으로 변환해 담았지만, 수십 명에 달하는 후보들의 공약 전부를 일일이 음성으로 들으려면 막대한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PC 및 노트북 기기 조작이 서툰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다.
시각장애인 황인철(47·대구 중구)씨는 "25일 저녁 종이상자 한 박스를 채울 만큼 두툼한 점자공보물과 함께 USB를 받았지만 다 확인하진 못했다"면서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많고, USB 역시 PC에 꽂은 뒤 파일을 직접 찾아야해 기기조작이 익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실제 현장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각장애를 가진 대구대 조성재 교수(재활상담심리치료학과)는 "ARS(음성사서함) 기술을 활용한다면 충분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유선상으로 자신이 사는 구·군과 시장, 시의원, 구의원 등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공약이 자동 낭독되는 시스템"이라며 "행정적 의지만 있으면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즉시 도입이 가능하다. 공보물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장애인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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