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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시대정신의 보고를 찾아서 ⑤] ‘앞에 선 영웅’ 아닌 ‘지탱한 인물’, 우강 송종익 선생

2026-06-04 17:27

‘실무형 독립운동가’…조직·자금으로 독립운동 떠받쳐
전면 아닌 후방에서 독립운동 지속 기반 구축
분산된 독립운동 세력 잇고 재정 기반 마련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이 대구 수성구 대구경북흥사단 건물 앞에 설치돼 있다. 김현목 기자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이 대구 수성구 대구경북흥사단 건물 앞에 설치돼 있다. 김현목 기자

지난 1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2동 흥사단회관 입구.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우강 송종익 선생(1887~1956년) 흉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 앞엔 정면을 바라보는 흉상이 있다. 크지 않지만 건물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시야에는 잘 들어온다. 차량과 보행객이 적잖은 생활도로와 인접해 있어 일부러 찾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흉상을 볼 수 있었다.


흉상 옆 안내문엔 우강 선생이 대구 출생 이후 미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현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한 이력이 적시돼 있다. 안내판 글씨는 또렷하게 읽히고 바닥과 주변 화단도 정돈된 상태다.


흥사단회관 2층엔 우강 선생 기념관이 있다. 1층 안내문을 통해 기념관 위치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구보훈청은 우강 선생 기념비를 '5월의 현충시설'로 선정했다.


대구 수성구 대구경북흥사단 건물 앞에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 옆에 선생의 업적을 설명하는 설명문도 자리잡고 있다. 김현목 기자

대구 수성구 대구경북흥사단 건물 앞에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 옆에 선생의 업적을 설명하는 설명문도 자리잡고 있다. 김현목 기자

우강 선생은 대구에서 태어나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무장투쟁보다 조직 운영과 재정 확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00년대 초 국내에서 신민회 계열 활동에 참여한 뒤, 일제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미주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다양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며 조직을 확대했다.


흥사단 창립에 참여해 조직 운영을 맡았고 대한인국민회 등에서도 활동하며 한인사회 결집을 도왔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조직 유지에 필요한 실무를 주도적으로 담당했다.


우강의 역할은 독립자금 모금과 송금 체계 구축으로 이어졌다. 미주 동포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과정은 단순 후원을 넘어 임시정부 운영을 떠받친 재정 기반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여러 단체 간 협력을 조율하고 조직 정비에도 관여했다. 분산돼 있던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데 힘을 보탰다.


우강은 독립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한 '실무형 지도자'로 꼽힌다. 광복 이후 귀국했지만 국내외를 오가며 한인사회와 국가 재건을 위해 활동했다. 사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전문가들은 우강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조직 운영, 재정 관리,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기능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는 활동의 지속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영남이공대 김태열 교수(한국보훈포럼회장)는 우강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하나로 규합한 부분에 주목했다.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강 선생은 40여 년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통합의 상징성을 지닌 분"이라며 "보훈교육학적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이념·세대·젠더 간 갈등을 푸는 방법을 우강 선생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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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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