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 고산리에 위치한 유형문화유산 백세각 탐방
조선 전기 건축미 간직한 채 3·1운동 당시 태극기 제작
백세각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백세각의 의미를 언제나 되새겨볼 수 있다.석현철 기자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마을 안쪽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듯한 고택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경북도 유형문화유산 제163호 백세각(百世閣)이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하지만 백세각은 500여 년 세월 동안 성주의 역사와 정신을 품어온 공간이다. 조선 선비들의 학문과 절의가 깃든 이곳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역사와 문화를 전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다시 숨 쉬고 있다.
백세각은 조선 중기의 문신 야계 송희규(1494~1558)가 건립한 종택이다. 사헌부 집의를 지내며 권세가 윤원형 등을 탄핵했던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백세각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학문과 인격을 닦고 후학을 길러낸 선비정신의 터전이었다.
고택과 푸르른 잔디가 어울려 고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석현철 기자
ㅁ자형 구조의 백세각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로 임진왜란 이전 건축양식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석현철 기자
ㅁ자형 구조의 백세각 전경. 석현철 기자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 이전 건축양식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건물 곳곳에는 조선 전기 장인들의 손길이 남아 있다. 쇠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정교하게 맞물려 결구한 전통 목공기법이 적용됐으며, 대패가 보편화되기 이전 자귀로 다듬은 흔적이 서까래와 기둥 곳곳에 남아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목재에서는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숨결을 엿볼 수 있다.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임진왜란 이전 건립된 사대부 가옥이 전국적으로 드문 상황에서 백세각은 16세기 목조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백세각의 높은 역사적·건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 등급은 수십 년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2007년 경북도가 백세각을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 등)으로 승격 신청한 바 있으나, 현재까지 도지정 유형문화유산 제163호에 머물러 있다. 반면, 안동 임청각이나 봉화 한수정 등 타 지역의 유서 깊은 고택들은 보물이나 사적으로 승격되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이전의 희소한 목조건축 양식과 파리장서운동의 산실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지자체와 학계의 지속적인 학술 검토와 승격 재추진이 시급하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향후 국가지정문화유산 승격 가능성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백세각의 진정한 가치는 역사 속에서 더욱 빛난다.
백세각을 들어서는 입구 담벼락에 성주 장날 만세운동을 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석현철 기자
백세각으로 가는 마을 입구에 세워진 백세각 항일의적비. 석현철 기자
1919년 3·1운동의 함성이 전국으로 번져가던 시기, 백세각은 성주지역 유림들의 독립운동 거점 역할을 했다. 공산 송준필과 심산 김창숙 등 유림들은 이곳에 모여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고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 작성과 인쇄 작업을 진행했다.
이른바 '파리장서운동'은 무력이 아닌 도의와 정의를 앞세운 선비들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성주 장날 만세운동에 사용된 태극기가 제작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격문이 작성된 곳으로도 전해진다. 학문을 논하던 사랑채는 어느새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독립운동의 산실로 변모했다.
백세각을 관리하고 있는 송만수 종손, 백세각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현재 백세각은 종손 송만수씨 (79) 부부가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종택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부부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묵묵히 백세각을 돌보고 있다.
5월 30일 성주백세각에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문학과 판소리로 만나는 독립운동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성주군 제공>
5월 30일 성주 백세작에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문학과 판소리로 독립운동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성주군 제공>
특히 백세각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성주군의 고택종갓집 활용사업을 통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행사가 운영되고 있다.
백세각에서는 올해 1박 2일 일정으로 태극기 만들기 체험, 파리장서 목판 인쇄 체험, 전통 연극과 공연, 인문학 프로그램 등이 6회 진행된다.
지난 1일에는 외국인들이 백세각을 찾아 우리 전통문화와 독립운동 정신을 체험했으며, 오는 6일에도 외국인 방문 행사가 예정돼 있다. 또 9일에는 성주고등학교 학생들이 현장을 찾아 선비문화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송만수 종손은 "백세각은 우리 집안의 종택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선조들의 정신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함께 배우고 느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택종갓집 활용사업의 예산 불안정성은 백세각이 직면한 현실적인 한계다. 성주군은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파리장서를 품은 백세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한때 연 12회 열리던 행사가 예산 문제로 중단되었다가 올해 6회로 축소 재개됐다. 올해 전국 48개 고택·종갓집 활용사업 중 성주군에 배정된 예산 규모는 한정적이다. 3·1운동 당시 독립청원서 3천여 장을 인쇄한 유림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사업의 연속성을 담보할 안정적인 국·도비 확보와 콘텐츠 고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500년 전 선비들의 학문과 절의가 머물렀던 공간. 그리고 100여 년 전 나라의 독립을 꿈꾸던 함성이 울려 퍼졌던 공간. 백세각은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고 있다.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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