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평가관으로 활약중인 김동진 안동과학대 축구학과 교수가 심판 지도자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심판 역량 교육이 부재한 한국 축구심판계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 비디오 판독 도입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효설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손흥민을 필두로 한 역대 가장 화려한 대표팀 엔트리가 꾸려졌지만, 이번에도 그라운드를 누비는 한국 심판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주심과 부심은 물론, 비디오 판독 심판(VAR) 명단까지 '한국인 0명'이다. 2014년 브라질 대회 이후 벌써 4개 대회 연속 전멸이다.
대한축구협회(KFA)에 등록된 국내 심판은 8천745명. K리그 1~7부를 뛰는 그 많은 심판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국내 심판계의 위기와 대안을 듣기 위해 한국인 최초 U-20 월드컵 결승전 대기심을 지낸 '베테랑' 김동진(52) 안동과학대 축구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현재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평가관으로 아시아 전역의 심판들을 교육·평가하고 있다.
◆본선 출전 못한 중국도 심판 보내는데…
▷이번 월드컵 심판진 명단에서 한국만 쏙 빠졌다.
지난달 22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마무리된 AFC 챌린지리그 2025/26 토너먼트 8강전 - 4강전(서부 지역) 기간 김동진 AFC 심판평가관이 아시아지역 심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 전과 후 한 차례씩 심판들에게 피드백을 하고, 심판들을 이를 바로 심판하는 데 적용한다.<김동진 교수 제공>
"참담하다는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김종혁 심판이 AFC 예비후보 15명에는 들었으나 최종 10명에 추려지는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 심판 규모(170명)도 확 늘었는데 고배를 마셨다. 반면, 본선 진출도 못한 중국의 마닝 심판은 주심으로 당당히 낙점됐다. 우리 심판들이 국제무대에서 중국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최근 발표한 북중미월드컵 심판진 명단에는 6개 대륙 연맹, 50개 회원국에서 170명의 심판들이 이름을 올렸다. 참가국이 48개로 늘어 경기 수가 증가하면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129명)에 비하면 크게 늘었는데도 한국 심판은 한명도 없다. 중국은 주심은 물론, 부심과 비디오 판독 심판도 각 1명씩 이번 북중미월드컵에 간다.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 심판들은 월드컵에 가더라.
"AFC 소속 주심으로는 일본, 호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우즈베키스탄 심판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 심판이 마지막으로 월드컵 무대에 선 것은.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정해상 부심이 참가했다. 주심은 2002년 한일 대회 때 김영주 심판이 유일무이하다. 이후 20년 넘게 명맥이 끊겼다.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2022년 카타르 대회에 이어 이번 북중미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으로 단 한 명의 월드컵 심판도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인 주심이 월드컵 가는 게 개인적인 꿈이 됐을 정도다."
▷연이은 월드컵 불참이 국내 축구계에 미치는 구체적 악영향은.
"심판 판정에도 추세가 있다. 가령, 핸드볼 반칙에 대한 세부 기준은 시대와 전술 변화에 따라 계속 미세하게 변한다. 이번에 월드컵에 못 가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 심판들이 FIFA 규정, 세계 축구 심판계의 트렌드를 익힐 기회를 또 한번 놓쳤다는 게 치명적이다. 이걸 못 배우면 다음 월드컵 때 또 선발에 불이익을 받을테고. 한마디로 뒤처지는 것이다."
◆자가발전해 월드컵 나가라?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가 축구 선수 지원만 하고, 소속 심판국 교육 예산을 충분히 책정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2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마무리된 AFC 챌린지리그 2025/26 토너먼트 8강전 - 4강전(서부 지역) 기간 김동진(가운데) AFC 심판평가관이 아시아지역 심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동진 교수 제공>
"우리나라 심판 행정은 축협 산하 부서로서 인사와 예산이 종속돼 있다. 문체부에서 축협으로 예산을 보내면, 축협에서 심판국 예산을 결정한다. 일정 비율을 책정하는데 이게 턱없이 낮다. 2023년, 제가 축협 심판위원장 때 심판국 예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돈으론 심판에 대한 육성 개념 자체가 생길 수 없다. 문체부에 예산 부족 문제를 제기했지만, 축협에서 알아서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상식적으로 훌륭한 심판을 키우려면 뭐가 필요하냐? 두말 할 것 없이 심판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우수한 심판 지도자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심판에 대한 투자 자체가 없다. 심판 육성 프로그램도 없다. 혼자 성장해 월드컵 무대 나가라는 말과 똑같다. 유능한 심판이 클 수가 없다. 심판 출신으로서 정말 안타깝다."
▷결국 구조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뜻인가.
"영국의 PGMOL(프로경기심판기구)처럼 독립된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이 기구는 축구협회와 프로리그로부터 예산 자율권을 완전히 확보함으로써 특정 권력의 입김이나 정치적 힘의 논리로부터 심판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한다. 승부조작도 원천봉쇄된다. 외압을 막아주는 탄탄한 구조적 방패막이와 안정적인 재정이 뒷받침되면 고질적인 판정 시비를 지우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엘리트 심판을 키워낼 수 있다."
김 교수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루스탄 심판이 내 방으로 직접 찾아와 '내가 고칠 점이 무엇인가. 매섭게 지적해달라'고 청했다. 그의 다음 경기를 보니 내가 주문한 내용을 곧바로 수정해 판정을 내리더라. 축구 약체국일지라도 심판들의 간절함과 열정은 대단했다. 그 루스탄 심판은 현재 AFC의 핵심 주심으로 성장해 이번 월드컵 무대에 간다. 기초 공사조차 안 되어 있는 우리 심판계의 현실이 너무나 아쉬웠던 순간이다."
최근 K리그 경기장에선 심판을 향한 야유 소리가 부쩍 늘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한 후 현장의 판정 정확도가 오히려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프로축구 K리그의 공식 오심 발생 건수는 최근 몇 년 사이 폭증했다. 2024시즌 총 28건(1부 리그 8건, 2부 리그 16건 등)에 불과했던 공식 오심은 불과 1년 만인 2025시즌에 총 79건으로 약 2.8배나 치솟았다. 축구 커뮤니티에서 '축구 덕후가 심판보다 판정을 잘 본다'는 조롱 섞인 비난이 나올 정도다.
▷K리그의 오심 폭증과 VAR 의존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심판을 지도할 사람이 없으니까 오심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2017년 K리그1에서 아시아리그 최초로 VAR을 도입했는데, 오히려 이게 축구팬들의 심판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심판들이 최종 심판자가 되지 않고 오히려 기계에 의지하는 거다. 많게는 VAR을 4~5번 돌려보는 심판도 있다. 현장 심판진의 판정 정확도와 관리 체계가 최근 급격히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심판으로서 역량이 커질 수가 없다. "
▷심판들의 처우는 어떤가.
"1부 리그 주심 정도 되면 1억 정도 받는다. 2부 리그부터는 심판만 해서 생계 유지가 힘들다. 경기당 얼마씩의 수당을 지급한다. 대부분 투잡을 뛴다. 선진국에선 변호사, 의사, 경찰 등 직업을 갖고 심판이 좋아서 한다. 우리나라는 (심판이) 하고 싶어서 뛰어들긴 하는데 돈이 안되니까 올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주심이 한 경기에 대략 10~12km 뛰는데, 이 정도면 미드필더 한명이 뛰는 거리다. 체중관리, 웨이트를 선수 버금가게 해야 하고 국제 무대에 뛰려면 피지컬은 물론, 외국어 능력도 필요하다. 이 모든 걸 심판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두고 있다."
▷대안을 제시해달라.
"먼저, 스타 심판을 육성하고 배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심판 육성을 위한 선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나이 어린 엘리트 심판을 선발해 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둘째, 심판 강사 양성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심판들에게 배울 기회를 주고 인재를 선발, 발탁해 현장 심판들을 1대1로 밀착 마크하며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심판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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