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 예산은 1천79억원으로 전국 광역 지자체 문화재단 가운데 단연 최대 규모다. 부산(668억원)이나 서울(600억원)을 압도한다. 외형만 보면 대구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문화 부흥기를 이끄는 듯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실망을 넘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지역 문화의 핏줄인 예술인 직접 창작 지원 예산은 고작 31억 2천만원으로 전체의 2.9%에 불과하다. 예산 총액이 대구의 절반 수준인 서울문화재단이 순수 창작 지원에만 105억 원을 쏟아붓는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처사다. 무늬만 거대 기구일뿐, 실제로는 지역 문화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진흥원의 기형적인 예산 구조는 예견된 참사다. 전임 홍준표 대구시장은 효율성 극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대구지역 문화예술기관들을 하나로 묶어 진흥원을 출범시켰다.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박물관, 관광재단까지 성격이 전혀 다른 7개 기관을 한 그릇에 담다 보니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 같은 경직성 고정비가 예산의 대부분을 잠식해 버렸다. 시 재정이 악화되자 진흥원은 고정비가 아닌 '가장 깎기 편한' 예술인 창작 지원 예산부터 칼질했다. 통합 전인 지난 2022년 직·간접을 포함해 175억원에 달하던 창작 지원 예산이 올해 60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청년예술가 육성 지원 예산은 아예 전액 삭감되는 비극을 맞았다.
이달말 퇴임하는 대구시 한 고위 공무원은 "진흥원의 거대 공룡화가 심각하다. 기능이 다른 분야를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통합해 놓으니 간부 직책과 행정 경비만 늘었다. 순수 예술인 지원금이 줄어 청년들이 대구를 떠난다"고 고백했다. 평생 시정에 몸담은 관료가 보기에도 지금의 진흥원은 회생 불능의 괴물이 되었다는 증언이다. 문화예술은 경제의 종속물이 아니라 강력한 성장 동력이자 인구 방어선이다. 도시의 품격과 미래를 결정하는 공공재이기도 하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 대구 문화의 미래인 청년 예술가 지원 예산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은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거꾸로 행정'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6·3지방선거를 통해 신임 대구시장을 맞으면서 진흥원의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이 열렸다. 때마침 대구시도 조직개편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문화예술과 이질적인 관광재단과 박물관 등은 과감히 분리해 각각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 예술인 창작 지원 예산은 어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침범할 수 없는 '최저 마지노선'을 정하는 등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신임 대구시장은 '무늬만 통합' 유산을 과감히 청산하고, 지역 예술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논설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