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정치’가 자초한 공천 난맥…“탑다운 공천, 지역정치에 의미 없다”
전문가들 “핵심은 인적 쇄신…선거제 개편은 국민의힘이 앞장서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3일 대구 달서구 진천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6·3 지방선거가 대구·경북(TK) 정치권에 남긴 것은 결국 다가올 2028년 총선을 향한 숙제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단체장을 비롯해 주요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득표율 급락과 곳곳의 접전으로 '조건부 재신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 중앙당 중심 '탑다운' 공천 바꿔야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해묵은 과제인 공천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은 컷오프 논란과 가처분 신청으로 한때 여당에 지지율 우위를 내주기도 했으며, 경북에서는 4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실점'을 기록했다. 공천 문제가 곧 분열로 이어진 셈이다.
TK 보수 진영의 공천 파동은 선거 때마다 반복돼 온 '익숙한 풍경'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이른바 '진박 공천' 논란 속에 당시 주호영·유승민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공천에 반발한 무소속 후보가 경북 기초단체장에 당선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미래통합당의 컷오프에 불복해 탈당,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을에서 당선됐다. '공천=당선' 등식이 만들어 낸 잡음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 구조의 이유를 '기득권화'로 진단했다. 그는 "TK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랜 기간 장기 집권을 하며 기득권화돼 있다"며 "유권자들이 어차피 찍어주다 보니 정치인들이 혁신을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소외당하거나 홀대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TK공항(대구경북 민·군통합공항) 문제가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충분히 매듭지을 수 있었음에도 해결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대비되는 것은 같은 영남권인 PK(부산·울산·경남)다. 이 평론가는 "PK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지지 정당을 바꿔 정치인들에게 '언제든 심판받을 수 있다'는 긴장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해양수산부 유치나 공공기관 이전 같은 현안을 쟁취해 낸다"며 "반면 TK는 공천 과정이나 후보 자질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무조건 당선되니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처방으론 공천 방식의 변화가 거론된다. 중앙당이 내려보내는 공천이 반복되는 한, 이번 컷오프 논란이나 무소속 이탈 같은 상황은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과연 국민의힘이 TK 유권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역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에 대해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탑다운' 방식의 공천은 지역 정치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공천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논의와 함께 제도 정비,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인적쇄신·선거제도 변수
지역 정가에서는 향후 국민의힘 지도부의 변화가 신인 발굴과 공천 시스템 정비로 이어지지 못하면, 2028년 총선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 평론가는 "지금의 TK 정치인들은 도전하지 않아도 연임이 가능하기에 안주하는 '웰빙 정치인'에 가깝고, 다선 중진들조차 큰 정치를 향한 도전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이 주기적으로 교체돼야 지역이 살아난다.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해야 할 시점이며, 이번 개혁의 핵심은 결국 인적 쇄신"이라고 말했다.
공천이나 인적 쇄신과 함께 거론되는 또 하나의 과제는 선거제다. 이번 대구시의회 지역구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31석을 독식했고 민주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40%를 넘는 표를 받았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40%대를 얻고도 의석으로는 연결되지 못하는 '민심·의석 괴리'가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도 이 같은 점이 지속될 경우 대구·경북의 정치 다양성 확보는 크게 어려운 상황이다.
경북 출신의 민주당 임미애(비례대표) 의원 등은 꾸준히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임 의원은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부겸 전 총리가 일으킨 바람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려면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선거 제도로는 청년들의 지방 정치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요구했다.
강 교수 역시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왜 선거제 개혁이 필요한지 본질적인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보수 지지층이 감소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오히려 국민의힘이 앞장서서 주장해야 하는 제도"라고 언급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장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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