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청년, 남겨진 노인 그리고 돌아오는 사람들
고립과 선택 사이…섬이 품은 불편함과 삶의 가치
경북 울릉군 도동항에 하루를 시작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 <홍준기 기자>
오전 6시 30분. 경북 울릉군 도동항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모여든다. 갓 잡아 올린 수산물을 정리하는 어민들, 육지로 나갈 배 시간을 확인하는 주민들, 관광객 맞이에 나선 상인들까지 섬의 아침은 생각보다 분주하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은 날씨 앞에서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다.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거세지면 여객선 운항은 중단된다.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육지 사람들에게는 쉽게 체감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저동에 사는 김성갑(70) 씨는 "배가 안 뜨는 날이면 울릉도는 다시 섬이 된다"고 표현했다. 그는 "육지 사람들은 하루 이틀 배가 안 뜨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울릉 주민들은 병원 예약부터 생필품 공급까지 모든 계획이 뒤틀린다"라며 평생을 울릉에서 살았어도 여전히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기상예보를 확인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울릉도 주민들에게 바다는 풍요를 안겨주는 삶의 터전이지만 동시에 넘기 어려운 경계선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문제는 의료 분야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육지 이송 여부가 생명과 직결된다.
헬기와 응급선박 체계가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기상 악화라는 자연의 장벽까지 완전히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도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몸이 아픈 것보다 제때 육지 병원에 갈 수 있을지가 더 걱정될 때가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울릉군 보건의료원 전경. <홍준기 기자>
교육 문제 역시 섬이 안고 있는 오래된 고민이다. 울릉읍 한 카페에서 만난 학부모 박수연(37) 씨는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는 "학교 규모가 작아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오히려 좋은 편"이라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육지로 나가는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울릉도를 떠난다. 울릉고를 졸업한 뒤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이모 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고향은 좋지만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앞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섬의 인구 감소는 통계보다 먼저 거리에서 체감된다. 한때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마을 골목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문을 닫은 빈집과 폐교 이야기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울릉도의 이야기를 단순히 '소멸'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도시를 떠나 울릉도로 향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아이들로 가득했던 초등학교 앞에 어르신들만 옹기종기 모여있다. <홍준기 기자>
저동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30대 김모 씨는 4년 전 수도권 생활을 정리하고 울릉도에 정착했다. 그는 "처음에는 여행으로 왔다가 삶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며 "불편한 점은 많지만 사람과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점이 도시와 가장 큰 차이"라고 미소 지으며 전했다.
그가 말한 '삶의 속도'는 울릉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택배가 하루 늦게 오는 일보다 이웃의 안부를 먼저 묻는 문화, 경쟁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생활방식, 바다와 산이 일상이 되는 환경은 도시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가치다.
북면 천부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80대 주민 최성환 씨는 "예전에는 집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로를 믿고 살았다"며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여전히 이웃이 먼저 달려오는 곳이 울릉도"라고 회상했다.
배상용 울릉군발전연구소장. <울릉군발전연구소 제공>
전문가들은 울릉도의 미래를 단순히 인구 숫자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배상용 울릉군발전연구소장은 "그동안 섬은 부족한 공간,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에는 자연환경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며 "울릉도의 경쟁력은 육지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만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의료와 교육, 교통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청년이 떠나지 않고 외지인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울릉공항 개항 이후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울릉공항은 섬의 미래를 바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주민들은 접근성 향상과 생활권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섬 고유의 공동체 문화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새벽이 지나고 저동항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자 어선들이 하나둘 바다로 향했다. 배는 떠났고 섬의 하루도 다시 시작됐다. 불편함은 여전하다. 인구 감소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섬을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섬을 찾는다. 울릉도는 지금도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섬에 산다는 것은 단순한 고립일까. 아니면 불편함까지 끌어안고 선택한 또 다른 삶의 방식일까.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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