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가 전수조사한 제9대 대구·경북 기초의회 31곳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이 충격적이다. 출범 이후 사용한 업무추진비가 무려 100억원에 육박했다. 주민 혈세로 지원되는 예산이 지방의원들의 단체 등산복 구입, 과도한 개인 명함 제작, 특정 고깃집 몰아주기 식사 등 선심성·사적 용도로 펑펑 쓰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침을 위반한 '쪼개기 결제'와 인원 부풀리기 수법 등 편법 지출 의혹도 무더기로 나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구·경북의 상당수 기초의회가 두루뭉술한 사용처만 텍스트로 명시하거나 아예 비공개로 일관해왔다는 사실이다. 의회사무국의 내부 통제 마비로, 주민의 알권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사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방만 집행은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 없이는 치유 불가능한 고질병이다. 조례에 명시된 연 1회 이상의 실태점검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의장 본인이 업무추진비 사용의 당사자인데, 무슨 수로 엄정하게 가위질을 하겠는가. 감시를 받아야 할 인물이 스스로 감시 규칙을 만드는 구조적 모순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침묵의 동업자 의식이 30년 넘게 방만 집행을 부추겨온 배경이다. 내부의 자정 기능이 마비되니 '기초의회 무용론'이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 '지방의회의 양심에 맡기자'는 허울 좋은 소리를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가 적용된 제도적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 스웨덴 등 북유럽 지방의회의 경우, 의원 개인에게 주는 법인카드가 없고 사후 정산만 허용될 뿐이다. 100원짜리 영수증 한 장까지 인터넷에 실시간 전면 공개된다. 일본의 대다수 지방의회도 1엔 단위의 영수증까지 전부 스캔해 주민들에게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조례로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다수 지방정부와 의회도 공금을 집행하면 영수증 원본 스캔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공개한다. 영수증 원본은 숨긴 채 의회사무국 직원이 대리 작성한 '두루뭉술한 텍스트'만 사후에 던져주는 우리네 방식은 부정과 부패를 키우는 온상일 뿐이다.
올해 하반기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방의회 업추비 실태 재점검을 예고했고 시민사회단체도 신고 검토에 착수했다. 다행스럽지만, 사후 약방문식 적발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전면적 쇄신이다. 오는 7월 새 지방의회가 출발하는 지금이 적기다. 지방의회는 '셀프 조례' 제정권 뒤로 숨지 말고, 영수증 원본 실시간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의회로부터 독립된 외부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독립적 감사관제도 도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민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이다. 혈세를 제 돈처럼 여기는 지방의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지 못한다면, 지방자치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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