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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시와함께] 서하 ‘살구, 살구 울어요’

2026-06-29 06:00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모르고 한 장 더 넘겨 쓴 페이지


훗날에 발견하듯이 살구꽃이 왔어요


느닷없다는 말처럼 느닷없이


온 들판에 흩어져 있던 북데기들 몰려들어요


고모는 살구꽃이 벙글기 시작하면 몽글몽글 눈물을 풀어요


눈물에도 살이 오를 때가 있는지


어디서 사랑을 놓친 것일까


독한 놈, 미친놈, 욕 한마디 못 하는


곰보 고모 속에 깊이 가라앉은 고래가


잘 빠져나오도록


수초 같은 목젖이 살짝 비켜주기도 해요



세상에는 빈자리가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있다. 쪽방 더위에 하얗게 타는 등이 그렇고, 장롱 속에서 고함을 피하는 무릎이 그렇고, 지나친 골목에서 들었던 울음과 어느 현장에서 들리는 죽음이 그렇다. 모르거나 모른 척 한 장 더 넘겨 쓴 페이지를 우리는 좀처럼 들춰보지 않는다. 그 텅 빈 침묵의 시작에 사랑을 잃은 마음이 있다. 소외된 사랑의 이전에 소거된 사랑이 있다. 그때 기적처럼 '눈물에도 살이 오른다'는 문장이 도착한다. 이 발견을 통해 시인은 세상의 모든 비극은 말하지 않는 곳이나 말해지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인간의 고통과 슬픔이 점점 부풀어오른다는 것을 '곰보 고모'의 모습으로 증명한다. 살구가 부쩍 커지는 계절. 그것이 누구의 슬픔으로 자라고 있는지, 각자가 비워놓고 온 페이지 들춰보자. 늘어진 가지 사이에서 자신의 붉은 뺨을 만나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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