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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가마이 보니까’

2026-07-02 06:00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

지난 주말에,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단체 관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었지만, 작품 소개를 보자마자 "아, 칠곡 할매들 한글 배우는 이야기!"라고 바로 감이 왔다. 팔십줄에 성인 문해학교를 다니며 난생 처음 한글을 배워서 읽고 쓸 줄 알게 된 칠곡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2019년, 김재환)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었다.


원작 다큐를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평가가 좋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쭈글쭈글한 할매들 글자 공부하는 이야기를 누가 보겠노?"라는 대사처럼 딱히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전혀 없는 이야기가 다큐 영화에 이어 2차 저작물로까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범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가 왜 잘 팔리지?'라는 의문은 공연을 보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할매들이 경상도 투박한 사투리로 맞춤법도 종종 안 맞게 쓴 시 하나하나가 OTT 인기 드라마 명대사 못지않게 관객을 웃기고 울려댔다. 사실 대충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큰 기대 없이 갔는데, 공연 내내 눈물을 훔치느라 혼이 났다.


시는커녕 노년에서야 글을 처음 배운 할머니들이 쓴 시가 이렇게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했다. 글은 몰랐어도, 팔십 인생을 '살아냈기' 때문이었다. "시는 오만 데 다 있습니다, 널려있는 시를 찾아오세요." 한글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하기 위해 할머니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평범한 일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소녀 시절 첫사랑의 추억, 딸로 태어나 당한 설움, 글자를 몰라 주눅 들었던 일들, 이루지 못한 어릴 때의 꿈,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 늙어서도 여전히 그리운 엄마,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 팔십 년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삶이 품고 있던 사연들이 시가 되어 그야말로 온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큰오포댁 박금분 할머니가 쓴 시 그대로였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참 만타/여기도 시/저기도 시/시가 천지삐까리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는 어떻게 '발굴'되는 걸까? 사실 성인 문해학교는 2006년부터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지원으로 칠곡뿐 아니라 전국 거의 모든 지자체가 실시하고 있고, 문해학교 어르신 학생들이 쓴 시를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붐이 인 것도 10년이 넘은 일이다. 수많은 문해학교 어르신 이야기들 중에서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할매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야기가 된 사연은 일견 우연처럼 보였다. 어느 날 어머니한테서 친구들과 까르르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만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감독은 고민에 빠진다. 시사 고발 전문 다큐 감독에게 '70대 권사님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 제작은 그야말로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그러다 출근길에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 방송에서 처음 한글을 배운 칠곡 할머니 이야기를 접하고는 '아,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원래 있던 '평범한' 이야기가 영화와 뮤지컬의 소재가 되는 '특별한' 이야기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 평범한 삶에서 특별함을 찾아낸 감독의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보았을 뿐인데 나도 내 삶과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시? 시가 머꼬?"라던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난 후 세상이 온통 시로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특별한 이야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애정을 갖고 '가만히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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