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의 어부와 나무꾼
이숭효, '귀어도', 모시에 수묵, 21.2×15.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낚시' 하면 떠오르는 선생님이 있다. 훤칠한 외모에 말수가 적은 국어 선생님이다. 기행을 부리고 다녀서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낚시였다. 학교 본관 앞에 관상용 잉어가 노니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방과 후 선생님이 낚시를 했다는 얘기였다.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운 선생님을 상상하며, 전교생이 웃음을 물고 다녔다.
◆어부의 '일인극'과 어부와 나무꾼의 '이인극'
'어부'는 옛날부터 문학과 그림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속세에서 벗어나 세월을 낚으며 숨어 사는 고수를 암시하기도 해서다. 화가들이 즐겨 다룬 '어부도(漁夫圖)'를 감상하며, 은일사상을 짚어본다.
예로부터 초야에 묻혀 낚시를 하는 어부나 나무를 하는 나무꾼, 밭갈이 하는 농부, 글을 읽는 선비는 은일자가 꿈꾸는 모델이다. 혼란한 시대를 만나면 은둔하며 태평성대를 기다린다. 낚시의 일인자로 불리는 '강태공(姜太公)'이 그렇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그의 고사가 있다. 여상(呂尙,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하며 은일하던 때, 사냥하러 나온 주나라 문왕을 만난다.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감지한 후, 문왕을 따라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왕의 스승이 되어 정사를 보필하여 큰 공을 세운다.
어부를 주제로 한 그림은 고려시대부터 제작됐지만, 강태공을 주인공으로 한 고사인물화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 낚시 중인 어부를 그린 조어도(釣漁圖)를 시작으로, 소재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귀어(歸漁)'와 어부와 나무꾼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어초문답(漁樵問答)' 형식이다. 어초문답은 소식(蘇軾, 1036~1101)의 '어초한화록(漁樵閑話錄)'에 나온다.
이명욱, '어초문답도', 종이에 엷은 색, 172.7×94.2㎝, 간송미술관 소장
◆이숭효와 이명욱이 꿈꾼 어부와 나무꾼
물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부를 그린 '귀어도(歸漁圖)'는 백달(伯達) 이숭효(李崇孝, ?~?)의 작품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그의 집안은 4대가 화원화가였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이상좌(李上佐, 1465~?), 동생 이흥효(李興孝, 1537~1593), 아들 이정(李楨, 1578~1607)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가 요절했기 때문에 아들 정은 이흥효가 양육했다. 허균(許筠)의 '이정애사(李楨哀辭)'에 나오는 얘기다.
'귀어도'는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왼손에 들고, 낚싯대를 어깨에 걸치고 언덕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창만 남은 갓을 쓰고, 반팔 옷에 반바지 차림이다. 여름 햇살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다. 탄탄한 팔 근육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갈대밭을 뒤로 한 채, 맨발로 내려오고 있다. 강에 드리운 낚싯대를 바라보며 기다림의 이치를 터득한 모습이다. 얼굴이 환하다.
어부만 등장하던 '귀어도'는 또 다른 형식으로 변형된다. 이명욱(李明郁, 1640경~?)의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에는 나무를 하고 돌아오는 나무꾼과 대화를 하는 어부가 등장한다. '어초문답'은 북송의 도가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이 지은 '어초문대(漁樵問對)'를 바탕으로 했다. 어부와 초부가 서로 묻고 답하는 구성으로 천지 만물의 의리(義理)를 천명한 내용이다. 자연에 귀의하여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어부와 초부는 꾸밈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인물화에 두각을 드러낸 이명욱은 화원화가로 활동했지만 남아 있는 작품이 적고 그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다. 화원화가 설탄(雪灘) 한시각(韓時覺, 1621~?)의 사위로, 화제(畵題)가 정묘하고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숙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떠났다.
'어초문답도'는 수려한 필법과 인물의 표정, 생동하는 인물이 돋보인다. 세밀한 필치의 갈대숲이 바람을 타고 상스러운 기운을 풍긴다. 테만 있는 갓을 눌러 쓰고 왼손에 두 마리의 물고기를 들었다. 오른손에는 낚싯대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 나무꾼의 이야기를 듣는다. 진지한 눈빛에 긴 수염이 세상을 초월한 인상이다. 옷 주름은 인물의 뼈대를 살려 붓질에 강약을 주었다. 손발의 묘사가 탄탄하다.
나무꾼은 고개를 들어 어부에게 손짓을 하며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다. 앞으로 걸어가는 포즈로, 얼굴을 반쯤 올려 어부를 바라본다. 오른손에는 막대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허리춤에는 도끼가 끼워져 있다. 천을 덧대어 꿰맨 옷이 강바람에 펄럭인다. 초인다운 기품 때문인지, 얼굴이 맑다. 어부와 나무꾼은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희망에 부푼다.
조영석, '귀어도', 1746년, 비단에 수묵, 29.3×1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영석과 윤제홍이 사랑한 어부와 나무꾼
조선 후기가 되면, 어부는 배를 탄 채 강가에 서 있는 나무꾼과 대화하는 도상으로 변한다. 도화서 화원 시험에 '어부가 도롱이를 입고 돌아가네'라는 시제가 출제될 정도로 어부도가 인기를 끌었다. 귀가하는 어부와 선비는 도롱이를 입고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간다'는 것은 속세를 벗어나 은거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도롱이는 어부와 선비의 상징이다. 비바람에 움츠린 자세는 속세와 절연한 채 고독하게 사는 문인을 표현한 것이다.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귀어도'에는 두 명의 어부가 도롱이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산수화를 배경으로 인물은 작게 그렸다. 그림에 병인년(丙寅年)에 그렸다는 관기가 있다. 1746년, 예순 살 때의 그림이다. 조영석은 선비가 주인공이 아닌 서민을 내세워 사실화 시대를 연 사대부 화가다. 서민들의 일상을 스케치한 14점을 묶은 '사제첩(麝臍帖)'이 전한다.
'귀어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인물은 작게 그려서 자연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오른쪽 높은 바위산이 위압적이다. 중간 농도의 먹으로 처리하여 거리감을 두었다. 앞에는 잡풀과 돌이 있고, 언덕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중심을 잡아준다. 길 사이로 왼쪽 공간에는 잡풀이 우거져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왼쪽 아래 도롱이를 입은 두 사람이 움츠리며 걸어간다. 언덕의 나뭇잎이 왼쪽으로 휘날린다. 어부가 입은 도롱이가 뒤쪽으로 날리는 것 또한 비바람 탓이다. 두 사람은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비바람을 헤치며 걷는 중이다.
귀어도는 유명한 시구를 화제로 그리기도 했다. 당(唐)대 장지화(張志和, 730~810)의 시 '어가자(漁歌子)'에 "서새산 마루에 백로 날고 도화철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찌누나. 대나무 삿갓에 도롱이 걸치고 가랑비 맞으며 돌아갈 줄 모르네"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 시구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여름이라는 계절과 어부가 귀가하는 도상이 결합된 시의도(詩意圖) 형식이다.
윤제홍, '우중귀래도', 종이에 수묵, 67.4×45.4㎝,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독특하고 이색적인 화풍을 구사한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 1764~1840)은 시의도를 많이 남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구를 만나면 반복하여 붓을 들었다. 담백하고 맑은 묵법으로 사물의 특징을 강조한 그림 15점과 글씨 30점을 수록한 '학산묵희첩(鶴山墨戲帖)'에는 그만의 화풍이 오롯하다.
'우중귀래도(雨中歸來圖)'는 1812년경에 만든 화첩에 수록된 작품이다. 당말(唐末) 이상은(李商隱)의 "해 저물어 돌아오는데 비에 옷이 흠뻑 젖네"라는 시구를 보고 그렸다. 그것도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다.
붓을 쓸어내린 듯 연한 먹을 세로로 번지게 하여 흰 공간이 마치 비처럼 보인다. 먼 산은 안개에 가려 습윤하다. 물기 머금은 나뭇잎이 솜처럼 뭉개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도롱이를 입은 어부가 낚싯대를 어깨에 걸치고 한가하게 걸어간다. 삿갓 아래 얼굴이 살짝 드러나 있다. 청빈한 삶을 상징하듯 발은 맨발이다. 어부의 자세가 꼿꼿하고 초연하다.
◆새소리를 낚는 도시 어부
새벽에 창을 열면 새소리가 청아하다. 그 소리를 깊이 들이키며 눈을 감는다. 조용할수록 자연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끔씩 새들이 날아와 베란다 난간에서 거실 안을 살핀다. 어떤 때는 작은 새와 큰 새가 모여 앉아, 크고 작은 소리를 풀어 놓는다. 이럴 때면 나는 피라미 같고 붕어 같은 새소리를 낚는 어부가 된다. 여고시절 국어 선생님과는 다른 나만의 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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