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최근 우리사회는 관련규정이 없어서라는 말로 사회문제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법과 규정을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줄 알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믿기보다 규정을 먼저 믿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상대를 불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공유공간(Shared Space)은 재미있는 답을 준다. 공유공간은 신호등과 중앙분리대, 과도한 표지판을 최소화하고 자동차와 보행자가 같은 공간을 함께 이용하도록 설계한 도시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사고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운전자들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고, 보행자와 눈을 맞추며 서로 양보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규칙이 줄어들자 오히려 사람들이 더 조심하고 배려하게 된 것이다. 도시의 활력은 높아졌고 교통사고도 감소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비슷한 사례가 바로 회전교차로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회전교차로는 '회전 중인 차량에 진입 차량이 양보한다'는 단순한 원칙 하나만으로 운영된다. 신호등이 없어도 운전자들은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주변 상황을 더욱 세심하게 살핀다. 오히려 신호만 기다리는 것보다 더 긴장하고 더 책임 있게 운전하게 된다. 불필요한 대기시간은 줄고 교통흐름은 자연스러워지며 사고 위험도 낮아졌다. 복잡한 규칙보다 단순한 원칙이 더 큰 효율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제품 하나를 출시하기 위해 수많은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신산업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장 진입이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비자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제가 당연하지만, 규제가 경제활동 자체를 어렵게 만들기 시작하면 혁신은 느려지고 투자와 일자리는 줄어든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불필요한 절차와 과도한 규제는 거래비용을 높이고 경제의 수레바퀴를 뻑뻑하게 만들게 된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부담도 커진다. 규정을 어기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감시하게 되고 절차를 맞추느라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새로운 도전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스트레스는 커지고 창의성과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규칙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명확한 원칙이다. 모든 행동을 통제하기보다 사람들의 양심과 책임, 그리고 신뢰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의 배려에 감사하고 약속을 지키는 바른 가치관과 보편적 윤리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면 굳이 모든 상황을 규정으로 관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처벌이 무서워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행동하기 때문이다.
공유공간과 회전교차로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잡한 규제보다 단순한 원칙이 더 큰 안전과 효율을 만든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에도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자율과 책임이 확대된다면, 시장은 더욱 활력을 얻고 혁신도 빨라질 것이다. 진정한 선진사회는 법과 규칙이 많아서 유지되는 사회가 아니다. 신뢰와 믿음으로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보편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사회이다. 우리가 늘려야 할 것은 규정집의 두께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이다. 예전처럼 올바른 가치관이 일반화되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많은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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