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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 서사에 굶주린 한 소설가의 말로

2026-07-03 06:00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은 창작의 윤리를 화두로 삼는다. 맨 끝줄에 앉은 학생이 써내는 글에 매혹된 교사는 어느새 그 글을 통해 한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창작을 위해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일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희곡은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다음 단계에서 학생의 글이 현실을 기록한 것인지, 허구인지 의심하는 교사와 학생의 갈등을 펼쳐놓는다.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이 불편한 모호함은 단순한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를 끊임없이 고찰하게 만드는 작품의 핵심 동력이다.


지난달 공개된 동명의 OTT 시리즈는 이러한 원작의 문제의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주제를 동시대적으로 확장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맨 끝줄 소년'(연출 김규태)은 창작의 윤리라는 오래된 화두에 장르적 쾌감을 덧입힘과 동시에 오늘날 서사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성향을 정교하게 포착해낸다. 이 중심에는 두 번째 소설을 쓰는데 실패한 문학교수, '허문오'(최민식)가 있다.


작가로서 문오가 봉착한 문제는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변주해냈던 첫 작품 이후, 그에게는 문학적 재료가 소진된 상태다. 그는 무미건조한 자신의 일상에 소설의 소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오에게 타인의 삶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잠재적 플롯이다. '맨 끝줄 소년'은 이런 문오를 통해 세상을 글쓰기의 소재로만 바라보는 창작가의 탐욕스러운 시각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강'(최현욱)은 그런 문오의 집착과 욕망을 간파하고 영악하게 이용하는 학생이다. 그는 문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친구 '세윤'(이진우)의 집에 입주해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써내려간다. 여기서 관찰은 관음으로 미끄러진다. 또한 관음은 타인의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쉽게 획득되는 권력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문오는 점차 세윤의 가정사에 개입하면서 상상력을 키우는 이강을 꾸짖지만 세윤의 아버지가 자기의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작가의 위치를 이어받아 폭주하기 시작한다. 문오의 콤플렉스가 침투하면서 이강의 글은 더 이상 현실을 좇지 않고, 완전한 상상력의 산물로 변모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권력은 이강에게 완전히 이양된다.


서스펜스와 진실게임을 주축으로 한 이 시리즈는 다소 예측 가능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열등감과 질투심에 빠져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창작가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다. 그러나 문오의 심리적 균열이 확대되는 과정은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문오역으로 분한 최민식 배우는 실패한 작가 이전에 서사에 굶주린 인간을 연기하는데 성공한다. 초반부, 문오가 이강이 바라는 대로 시험문제를 빼오는데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장면, 세윤의 아빠가 '김수훈'(허준호)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복잡한 감정이 올라오는 장면, 자신이 쓴 원고를 껴안고 '이건 내 소설이야'를 중얼거리는 장면 등에서 최민식은 그가 왜 최고의 배우인지 넘치도록 증명해낸다. 최민식의 얼굴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품고 있는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문오는 여러 면에서 동시대의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콘텐츠에서 늘 반전을 기대하고, 뉴스에서도 팩트보다 음모론을 찾는 우리의 습성은 문오와 닮아 있다. 서사를 통해 현실을 소비하는 우리 시대는 무엇을 배태하고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맨 끝줄 소년'은 평범한 장르물을 살짝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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